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박대겸(朴大謙). 자는 무업(茂業), 호는 송곡(松谷). 할아버지는 박주(朴澍)이고, 아버지는 생원 박여(朴瓈)이며, 어머니는 직장 성세강(成世康)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감찰·평안도도사 등을 지내고, 1608년 선조가 죽자 벼슬을 사직하고 은퇴하였다. 뒤에 이항복(李恒福)의 추천으로 훈련도감 종사관(從事官)에 보직, 이어 형조정랑·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을 거쳐, 선천부사로 나아가 농지개간과 군사훈련에 힘썼다.
조정에 돌아와 형조정랑·예조정랑·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를 거쳐, 1613년(광해군 5) 군자감정(軍資監正)으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였다.
그 때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키고 폐모론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험을 피하여 나주목사로 나갔다가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폐모론에 가담하지 않고 지조를 지켜 벼슬을 버린 일로 사림의 칭송을 받았고, 인조반정 후에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