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사앙(士仰). 충청도 대흥 출신. 할아버지는 박이건(朴以建)이며, 아버지는 박율(朴繘)이다.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직이 제수되었으며, 1686년 의금부도사로 권대운(權大運)을 압송할 때 편리를 보아주었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진주목사를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남인에 속하였으며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문장에 특히 능하였으며 운학(韻學)에도 매우 밝았다. 작품으로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가 있는데, 그 내용은 1678년 과거에 실패한 선비가 귀향하던 길에 요로원의 주막에서 양반인체하면서 유식을 자랑하는 인물을 상대로 주고받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당시 사회의 실정을 폭로하고, 정치제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세태를 풍자하였다.
저술로는 『삼운보유(三韻補遺)』와 그것을 증보한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