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혁 ()

유교
인물
일제강점기 때, 『수재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화실(華實)
수재(守齋)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3년(고종 10)
사망 연도
1935년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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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재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실(華實). 호는 수재(守齋). 아버지는 박병록(朴炳祿),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석윤(金錫允)의 딸이며, 전라남도 나주(羅州)의 송정리(松亭里)에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송병화(宋炳華)의 문인으로 심성(心性)에 관하여 연구 끝에 형(形)·기(氣)·신(神)·이(理)의 4글자를 표방하고 그것을 인체에 비유하여 “사람의 육체는 형(形)이고, 그 육체가 굴신(屈伸)하는 것은 기(氣)이며, 굴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신(神)이고, 그 굴신을 공중(恭重)하게 해야 하는 것은 이(理)이다. 따라서 형·기를 주로 하는 학문은 속학(俗學)이고, 신을 주장하는 학문은 이단(異端)이며, 이를 주장하는 것이 오도(吾道)”라고 주장하였다. 1918년 고종(高宗)이 승하하자 북천(北天)을 바라보고 통곡한 다음 문 밖 출입을 금했다.

일찍이 학문 강마를 위하여 지은 자락정(自樂亭)에서 시(詩)와 예(禮)를 강하며 많은 후생을 길러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저서로는 『수재유고(守齋遺稿)』 3책이 있다.

참고문헌

『간재집(艮齋集)』
『난곡집(蘭谷集)』
『송사문집(松沙文集)』
『수재유고(守齋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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