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실(華實). 호는 수재(守齋). 아버지는 박병록(朴炳祿),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석윤(金錫允)의 딸이며, 전라남도 나주(羅州)의 송정리(松亭里)에서 태어났다.
송병화(宋炳華)의 문인으로 심성(心性)에 관하여 연구 끝에 형(形)·기(氣)·신(神)·이(理)의 4글자를 표방하고 그것을 인체에 비유하여 “사람의 육체는 형(形)이고, 그 육체가 굴신(屈伸)하는 것은 기(氣)이며, 굴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신(神)이고, 그 굴신을 공중(恭重)하게 해야 하는 것은 이(理)이다. 따라서 형·기를 주로 하는 학문은 속학(俗學)이고, 신을 주장하는 학문은 이단(異端)이며, 이를 주장하는 것이 오도(吾道)”라고 주장하였다. 1918년 고종(高宗)이 승하하자 북천(北天)을 바라보고 통곡한 다음 문 밖 출입을 금했다.
일찍이 학문 강마를 위하여 지은 자락정(自樂亭)에서 시(詩)와 예(禮)를 강하며 많은 후생을 길러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저서로는 『수재유고(守齋遺稿)』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