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술음

  • 교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Model English Grammar』, 『학습영문법』 등을 저술한 학자. 교육자.
이칭
  • 취하(醉霞)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98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2년(고종 39)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재영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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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Model English Grammar』, 『학습영문법』 등을 저술한 학자. 교육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취하(醉霞). 서울 출신. 아버지는 박용헌(朴容憲)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1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송도고등보통학교 재학 때 3·1운동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퇴학당하였다. 당시 외국선교사들과 접촉이 잦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연희전문학교 영문과에 다녔고 졸업 후 1924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이 학교 재직 중 1937년 일본문부성 영어과교원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학교 교장직을 퇴임한 뒤 1947년 연희대학 영문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6·25전쟁 중인 1952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제자였던 당시 재무부장관 백두진(白斗鎭)의 천거로 사회부장관으로 발탁되어 능숙한 영어실력을 토대로 유엔민사처(UNCAC)를 비롯한 해외원조기관 등에 우리 나라의 참상을 호소, 많은 원조를 끌어들이기도 하였다.

또한 장관 재임 중 「노동조합법」·「근로기준법」 등의 사회입법을 통하여 노동자 권익보호에 관심을 기울였다. 뒤에 문교부장관으로 천거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한글맞춤법」개정명령에 반발, 이를 고사하였다.

사회부장관 퇴임 후 1955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 및 학장으로 부임하여 1977년 정년퇴임 때까지 영문법 등을 강의하면서 후진양성에 주력하였다.

그는 학장직을 수행하면서도 꼭 강의를 맡아 가르쳤는데, 낱말 하나하나의 기능과 의미를 꼼꼼히 분석, 학생들이 영어문장을 완벽히 이해하도록 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그의 강의와 학문적 세심성은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와 함께 후학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Model English Lessons』 3권(1959), 『Model English Grammar』 (1965) 등의 저서를 내기도 하였던 그는 정년퇴임 후 그 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모아 1981년 『학습영문법』을 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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