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경선(慶善). 흥천사(興天寺)에서 오래 생활하였다. 동만월(東滿月)의 제자인 대원(大圓)에게 상주권공(常住勸供)에서 작법(作法)과 영산(靈山) 짓소리에 이르기까지 재식(齋式) 일체를 배웠다.
젊어서 대어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1960∼1970년대에 들어와 기억력이 쇠퇴하여 짓소리를 많이 잊어버렸다. 서만월의 제자들이 봉원사를 중심으로 뭉쳐진 반면, 동만월의 제자들은 흩어져 있어 어려운 짓소리를 사용하지를 않아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범패의 의발(衣鉢)이 서만월계통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나, 1968년 5월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지정 자료조사차 봉원사에서 행한 영산재 전바탕에는 그도 참여하여 합창인 짓소리를 함께 불러 동만월의 맥을 이어주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자료실에 그의 독창에 의한 홋소리와 안채비소리 별곡의 녹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