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출론이 대두되자 신병을 핑계로 불참한 이유로 이듬해 고산현감(高山縣監)으로 좌천되었다. 1620년 영광군수를 거쳐, 그 뒤 홍문관수찬·정자(正字)·교리·응교(應敎) 및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뒤에는 제주로 유배되고, 이재영(李再榮) 등의 공사(供辭: 심문조서)에 의하여 박자응의 급제가 차술(借述: 남의 글을 빌려서 서술함)임이 밝혀지자 삭과(削科: 과거 합격자 등록에서 삭제)되었다. 1628년(인조 6) 진도로 이배된 뒤 이듬해 위리(圍籬: 죄인의 유배장소를 가시 울타리로 둘러치던 것)만 철거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응천일록(凝川日錄)』
- 『계해정사록(癸亥靖社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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