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형조판서, 경상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치량(稚亮)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반남(潘南)
  • 사망 연도1884년(고종 2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18년(순조 1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영우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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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형조판서, 경상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량(稚亮). 예조판서 박주수(朴周壽)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56년(철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58년 병조정랑·호조참의, 1860년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고종조에도 중용되어 대원군 집권기에는 병조참판·안악군수(安岳郡守)·영변부사(寧邊府使)·이조참판·한성부판윤·예조판서·형조판서, 민씨정권하에서는 경상감사(慶尙監司)·이조판서·상호군(上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감사로 재임시인 1875∼1876년은 영남일대가 연이은 흉년을 맞아 굶주려 죽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이같은 도내의 민정(民情)을 의정부에 장계로 보고해서 재해가 심한 읍면의 사창곡(社倉穀) 납부를 이듬해 가을까지 연기시키고 2,000결을 면세지로 책정받는 동시에 부민(富民)의 빈민구제를 권장하는 등 진휼대책에 힘썼다.

참고문헌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세장년록(世藏年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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