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교리, 사헌부장령, 승정원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4년 갑신정변 때 승지로 있으면서 신석유(申錫游) · 윤웅렬(尹雄烈)과 함께 정변을 주도한 개화파에게 동조, 이들에게 강요된 국왕의 전령을 전하고 관직을 받았다고 해서 삼사(三司) ·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의 거듭된 처벌 주장에 따라 1886년까지 안주목(安州牧)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사후 1894년에 벼슬이 회복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반남박씨세보(潘南朴氏世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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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부친 및 조부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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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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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안주목 유배 : 『고종실록』 23권, 1886년(고종 23) 4월 21일. "신석유, 박호양, 윤웅열을 원지 정배하고 안영수를 도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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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관직 회복 : 『고종실록』 32권, 1894년(고종 31) 12월 27일. "총리대신과 각 아문의 대신들이 죄명을 취소할 사람과 벼슬을 회복시켜 주어야 할 사람을 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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