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팽년 선생 유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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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사육신 박팽년 관련 집터. 유허비·순절지.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5년 06월 23일
대전 박팽년 선생 유허 전경 미디어 정보

대전 박팽년 선생 유허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사육신 박팽년 관련 집터. 유허비·순절지.

개설

박팽년 선생 유허에는 조선 전기의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이 거주한 곳으로 충청남도 회덕현 흥농촌 왕댓벌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현종대에 건립된 유허비가 비각에 남아있다.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내용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의 본관은 순천(順川)이고, 자는 인수(仁叟)이며,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세종대의 집현전 학사였으며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에 한 사람이다.

유허비는 1668년(현종 9)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쓰고, 민유중(閔維中)이 전액을 썼다. 비의 규모는 높이 141㎝, 폭 59.5㎝, 두께 32㎝이며,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672년(현종 13)에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壯節亭)이라 하였으며 그 후 6·25 때 비각이 파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 중건한 것이다.

유허비가 있는 곳에서 북으로 몇 보를 가면 박팽년이 지었다는 연못 정자 자리에 주춧돌이 몇 개 남아 있어서 500여 년 전의 자취를 살필 수 있다. 그가 이곳에 거주한 기간과 선조들이 이주한 시기, 그리고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의 미비로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유허비를 통해 선생이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살았던 구체적인 장소가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우암로 더퍼리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박팽년이 당시 회덕의 명문가였던 은진 송씨 송유(宋愉)의 별당인 쌍청당(雙淸堂)의 당기(堂記)를 썼다는 사실과 그 내용이 송유의 향촌 생활을 소상히 적고 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그가 이곳에 상당 기간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 『육신유고집(六臣遺稿集)』

  • - 『순천박씨 충정공파세보(順天朴氏忠正公派世譜)』

  • - 『용재총화(慵齋叢話)』

  • - 『대전문화』창간호(대전시사편찬위원회, 1992)

  • - 「육신 유허지의 금석문고」(조중헌, 『향토사연구』 6, 1994)

  • - 국가유산청(www.khs.go.kr)

  • -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gsm.nri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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