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기산(岐山). 경상남도 산청 출신. 성호(星浩)의 2남이다. 6세에 서당에서 한학을 시작하여 15세까지 사서삼경을 공부하였다. 1921년에 상경하여 한성강습소(漢城講習所) 보통과를 거쳐 1923년에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 고등과 3부를 졸업하였다.
1924년진주(晋州)에서 김덕천(金德天) · 임한수(林漢洙)에게 2년간 가야금풍류(伽倻琴風流) · 가야금병창(伽倻琴倂唱) · 고법(鼓法) 등 전통음악을 공부하였다. 1934년에 진주음률연구회(晋州音律硏究會)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있으면서 풍류와 민속악을 연구하였다.
1936년에 상경하여 정악견습소(正樂見習所)에서 정악을, 아악부(雅樂部)에서 아악풍류(雅樂風流)를 연구하였고, 1938년에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근무하면서 2년간 전통음악을, 조선가무연구회(朝鮮歌舞硏究會)에서 경서도(京西道) 가무를 연구하였다.
1941년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 산하에 조선악부(朝鮮樂部)를 창설하고 상무이사로 취임하여 공연과 교육활동에 종사하였다. 1945년에 광복이 되자 국악건설본부(國樂建設本部)를 창설하고 부위원장으로 취임하여 국악의 부흥과 계몽에 힘썼다.
1947년에 구왕궁아악부 대표 겸 이사장으로, 1948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및 시공관운영위원(市公館運營委員), 문교부 예술위원으로 취임하였다.
1956년에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을 창설하고 원장 겸 이사장에 취임하여 국악 진흥에 힘썼으며, 1960년에 국악예술학교(國樂藝術學校)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63년에는 국립극장운영위원 및 한국국악협회(韓國國樂協會)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韓國藝術文化團體總聯合會) 부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64년에는 문화재위원회(文化財委員會)(현, 문화유산위원회)의 위원을 역임하였다.
국악, 특히 민속악의 부흥과 교육에 공헌하여 1963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창악대강(唱樂大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