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건(子建), 호는 추산(秋山). 아버지는 박희룡(朴熙龍)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교관(敎官) 신복경(申福慶)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00(선조 33) 진사시에 합격, 1609년(광해군 1) 참봉·사산현감(四山縣監)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제수되었고,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김제남(金悌男)·이원익(李元翼)·남이공(南以恭)·정택뢰(鄭澤雷) 등을 변호하고, 폐모론을 일으킨 이이첨(李爾瞻)·윤인(尹訒)·정조(鄭造)·이위경(李偉卿) 등의 처벌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었다. 이정구(李廷龜)·이식(李植)·이항복(李恒福)·서성(徐省)·김상헌(金尙憲) 등 당시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으며, 1623년 인조반정 후 다시 관직에 기용되었다.
저서로는 『추산집(秋山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