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세자익위사세마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제수되었고,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김제남(金悌男)·이원익(李元翼)·남이공(南以恭)·정택뢰(鄭澤雷) 등을 변호하고, 폐모론을 일으킨 이이첨(李爾瞻)·윤인(尹訒)·정조(鄭造)·이위경(李偉卿) 등의 처벌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었다. 이정구(李廷龜)·이식(李植)·이항복(李恒福)·서성(徐省)·김상헌(金尙憲) 등 당시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으며, 1623년 인조반정 후 다시 관직에 기용되었다.
저서로는 『추산집(秋山集)』이 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추산집(秋山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