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5년(숙종 3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宋時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8년(숙종 44) 김진규(金鎭圭) 1725년(영조 1) 김창집(金昌集)을 추가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광복 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2칸의 전사청(奠祀廳), 정문, 4칸의 고사(庫舍) 등이 있다. 묘우에는 송시열을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김진규와 김창집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은 서원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 강론장소 등으로 사용되며, 동재는 제원들의 숙소로, 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전사청은 향사 때 제물(祭物)을 보관하는 곳이며, 주소는 서원을 지키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과 9월 중정(中丁: 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