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덕첨(德瞻), 호는 족한당(足閒堂).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 백당(白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영해박씨(寧海朴氏)로 첨정(僉正) 박의원(朴義元)의 딸이다.
처음에는 종조숙부(從祖叔父)인 백심(白琛)에게 수학하였고 뒤에 이천계(李天啓)·김언기(金彦璣)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김성일(金誠一)·남치리(南致利) 등과 학문적인 교류가 있었다.
1571년(선조 4) 천거에 의하여 선교랑(宣敎郎)에 제수되었다. 그 해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였다. 1574년 진잠현교관(鎭岑縣敎官)이 된 뒤 평해(平海)·연일(延日)·고령(高靈)·김해 등지의 교관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하여 권전(權詮)과 합세하여 축산(丑山)에서 적을 격파하는 한편, 외아들인 백민수(白民秀)를 곽재우(郭再祐)의 휘하에 보내 참전하게 하였다.
권춘계(權春桂)·유성룡(柳成龍)·황응청(黃應淸)·안여지(安汝止) 등과도 교분이 두터웠으며, 만년에는 후진 교육에 주력하였다. 저서로는 『족한당문집(足閒堂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