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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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내장산에서 안양을 은사로 득도하고 허주 덕진(虛舟德眞)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이칭
  • 화담(華曇)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김해(金海)
  • 사망 연도1902년(고종 39)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8년(헌종 14)
  • 출생지전라북도 덕흥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익 (전 동국대학교, 불교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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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내장산에서 안양을 은사로 득도하고 허주 덕진(虛舟德眞)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내용

학승.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화담(華曇). 당호(堂號)가 농묵(聾默). 전라북도 덕흥(德興) 출신. 석순(碩順)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18세까지 유학을 공부하다 출세간(出世間)의 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19세에 내장산(內藏山) 원적암(圓寂庵)에 들어가 정한장로(正罕長老)에게 출가하였으며, 백암산(白岩山) 운문암(雲門庵) 서관장로(瑞寬長老)에게서 사미계를 받았다. 평생 가까이 한 것은 『육조단경(六祖壇經)』과 『나옹법어(懶翁法語)』였다고 한다. 그 뒤 이름이 있는 강원들을 찾아가서 교학을 학습하였으며, 덕진(德眞)을 참방하여 선법을 참구하고 그의 법을 이었다.

항상 계율을 엄하게 지켰으며 관음주력(觀音呪力)에도 힘을 기울이는 한편 참선에 몰두하다, 45세에 “하하하 이것이 무엇인고? 현전(現前)의 한 생각이 진실한 부처로다. 만일 관음보살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원통(圓通)함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그 뒤 백암산(白巖山)에 들어가서 관음암(觀音庵)을 창건하고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그곳에서 55세로 입적하였다.

참고문헌

  • - 『석전문초(石顚文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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