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경기전참봉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체찰사(體察使) 정철(鄭澈)이 비장(裨將) 이잠(李潛)을 보내어 변사정의 부장(副將)이 되게 하였다. 그때 순찰사 권율(權慄)이 수원 독산성(禿山城)에서 구원을 청하자 의병장 임희진(任希進)과 함께 이를 구출하였으나, 정철의 권유로 호남을 지키기 위하여 옥천으로 내려와 상수 · 선산 등지에 주둔하고 황길 · 창원 · 함안 · 성주 · 대구 등지에서 적을 무찔렀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서 재외운량장(在外運糧將)에 추대되어 산음(山陰)에 가서 병곡 수백 석을 구하여 겨우 진주성에 운반하였으나 곧 성이 함락되었다. 선조에게 중흥책(中興策)을 상소하기도 하였으며, 1595년에는 첨정(僉正)으로 승진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자 정염이 “변사정이 있었다면 적이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겠는가?”라고 하였다 한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운봉(雲峰 : 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도탄집(桃灘集)』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호보(號譜)』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