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목포∼순천간 고속화도로 공사과정에서 발견되어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5기의 주거지가 있다. 이 주거지가 폐기된 후 그 위에 조개더미가 형성되어 있다.
주거지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주거지로 나뉜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는 지름 4m 내외 크기의 원형 바닥 중앙에 타원형 함몰부와 2개의 기둥구멍이 있다. 원삼국시대의 주거지는 원형 혹은 타원형으로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보다 약간 더 크다.
원형주거지 1기는 움이 없이 주거지 외곽을 따라 기둥구멍이 약 1.5m 간격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상가옥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주거지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 주거지가 폐기되고 난 다음 그 위에 버려진 조개더미 속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조개더미 속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철기·골각기·석기 등 다양하다. 중요한 유물로는 시루·국자형토기·소형토기·쇠도끼쇠낚시바늘·쇠화살촉·복골·뼈화살촉·흙구슬·돌칼·돌끌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자연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사슴·멧돼지·개 등의 포유류와 상어·복어·감성돔 등의 어류, 굴·꼬막·피조개·재첩·피뿔고둥·비단고둥 등의 조개껍질이 있다. 이와 같은 유물들은 해남 군곡리 패총에서 조사된 유물들과 상통하는 것들로서 1∼3세기대에 남해안지역에서 생계의 상당부분을 해양자원에 의존하는 집단이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유물 중 복골은 사슴과 멧돼지의 어깨뼈를 이용한 것으로 중국 동북부와 일본 등지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한 유형이다. 이것은 이 사회가 청동기시대의 샤머니즘 성격이 강한 제정일치단계의 사회에서 벗어나서 신권정치단계의 사회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