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7m. 고려시대 고승인 법인국사 탄문(坦文, 900∼975)의 유골을 모신 승탑으로, 탄문이 입적한 975년(광종 26)과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가 건립된 978년(경종 3) 사이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탑비와 함께 부도전(浮屠殿)에 자리하고 있다.
승탑은 바닥돌부터 지붕돌까지의 단면이 8각으로,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을 따르고 있다. 바닥돌은 4장의 널돌로 이루어졌는데, 윗면은 별다른 시설이 없이 아래받침돌을 받치고 있다.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구성되었다. 아랫단은 옆면의 각 면마다 1구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는데, 안상 안에는 각각 모습을 달리한 사자상(獅子像)이 1구씩 돋을새김되어 있다. 윗단의 윗부분에는 1줄의 띠를 둘러 덮개돌 모양을 새겼고, 아래부분에도 역시 1줄의 띠가 굽을 이루며 둘러져 있다. 다른 돌로 조성된 윗단은 아래부분에 굽을 돌려 굄대를 두었고, 옆면에는 구름 무늬와 용 무늬를 돋을새김하였다. 용 머리의 부리부리한 눈과 코, 입, 그리고 몸통의 비늘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8각의 모서리에는 귀꽃 장식이 서 있는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윗면에는 각지고 둥글면서 다시 각진 3단의 굄이 마련되어 가운데받침돌을 받고 있다.
하나의 돌로 조성된 가운데받침돌은 높직한 간주(竿柱) 모양인데, 8각의 각 면에는 아무 조각도 없다. 윗받침돌 역시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맨 아래부분에는 가운데받침돌의 굄과 대칭이 되도록 3단의 낮은 받침을 새겨 놓았고, 그 바깥쪽으로는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 16개가 8각의 옆면에 빙 둘러 새겨져 있다. 맨 윗부분은 1줄의 띠를 둘러 덮개돌 모양을 만들고서 그 위로 높직한 굄대를두었는데, 8각 굄대의 각 모서리에는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인 동자주(童子柱)와 함께 동자주를 잇는 난간을 새겼고, 그 사이에는 꽃 무늬를 조각해 놓았다. 굄대의 맨 윗부분에도 1줄의 띠를 돌려 덮개돌 모양으로 조각하고서 낮은 2단의 굄을 새겨 몸돌을 받치게 하였다.
몸돌은 가운데받침돌처럼 제법 높은 편이다. 각 면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고, 8면 전체에는 문비(門扉), 사천왕상, 서 있는 인물상 등이 돋을새김되었다. 지붕돌은 크고 넓으면서 두꺼운 편인데, 추녀에 이르면 점차 얇아진다.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그 바깥쪽으로는 목조 건물의 지붕을 모방하듯이 서까래를 조각해 놓았다. 윗면인 낙수면의 경사는 꼭대기부분만 급할 뿐, 밑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완만해졌다. 기왓골의 표시는 없지만 각 모서리의 합각(合角) 머리에는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이 굵으면서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전각(轉角)에는 서 있는 모양의 귀꽃이 장식되어 있다.
지붕돌의 맨 윗부분에는 1장의 꽃잎[單葉]이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를 8면에 돌려 새겼고, 그 위에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를 올렸다. 상륜부는 복발(覆鉢)과 보륜(寶輪)만 남아 있는 상태인데, 복발에도 역시 하나의 꽃잎이 아래로 놓인 복련의 큼직한 연꽃 무늬 8개가 조각되어 있다.
이 승탑은 각각의 부재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고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이다. 가운데받침돌이 지나치게 높고 몸돌마저 높아서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잃은 듯하지만, 지붕돌 각 모서리의 귀꽃과 반전 등으로 둔중함은 면하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 몸돌의 조각 수법은 우수하지만 부분적으로 약화된 경향도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