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년(효종 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한충(韓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662년(현종 3) 김장생(金長生), 1686년(숙종 12) 송준길(宋浚吉), 1721년(경종 1)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배향하였다.
1665년(현종 6)에 ‘봉암(鳳巖)’이라는 사액을 받아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현재는 서원터에 봉암서원사적비(鳳巖書院事蹟碑)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