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을 올렸다. 극락전 앞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1969년에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는 1616년(광해군 8)에 손질하여 고쳤다고 한다. 1969년 이전에는 북쪽 지붕이 팔작지붕이었고, 건물 앞쪽에는 쪽마루가 놓여 있었으며, 앞면의 각 칸마다 외짝 여살문을 달았다. 하지만 수리를 하면서 앞면 3칸에는 각 칸마다 2짝의 띠살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모두 벽으로 막았으며, 벽 속에 묻혀 있던 첨차(檐遮)와 창방(昌枋) 등도 건물 뒷면을 기준으로 삼아서 지금의 모습으로 고쳤다.
건물의 가구(架構)는 고주(高柱)가 없는 7량(樑)으로, 기둥 위에만 공포(栱包)를 짜 맞추어 놓은 주심포(柱心包)계 양식이지만 익공(翼工)에 가까워 보인다. 대접받침처럼 생긴 주두(柱頭) 밑에는 창방과 교차하는 헛첨차를 끼웠고, 그 위에는 주두 위에서 나온 살미첨차[山彌檐遮]를 포개 놓았다. 다시 그 위에는 도리 방향으로 1출목(一出目)의 행공(行工)첨차를 얹어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치게 하였다. 이러한 가구 때문에 익공계 건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옆면의 가구는 벽면 가운데에 귀퉁이에 세운 귀기둥보다 약간 높은 고주를 놓아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짧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쳤으며, 그 위에는 다시 짧은 기둥이 놓여 마루도리를 떠받치고 있다. 특히 도리와 함께 장여를 바깥쪽으로 길게 빼내어서 옆면 지붕에 깊이감을 주었다.
고금당은 요사(寮舍)로 사용된 건물로, 마주 보고 있는 화엄강당(華嚴講堂)과 제법 비슷한 점이 많지만, 공포를 3칸의 기둥 위에만 올린 주삼포(柱三包)를 택하여 다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