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조직인 만호부(萬戶府)에 소속되었다. 만호부가 처음 설치된 것은 1281년(충렬왕 7)으로 여·원 연합군(麗元聯合軍)의 일본정벌 실패 직후이다.
이 때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남해안 요충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두었는데, 맨처음 김해 지방에 김주등처진변만호부(金州等處鎭邊萬戶府)를 두었다. 이는 합포등처진변만호부(合浦等處鎭邊萬戶府)로 바뀌었다. 이 후 전라도진변만호부(全羅道鎭邊萬戶府)와 서경만호부(西京萬戶府)·탐라만호부(耽羅萬戶府)·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 등이 설치되었다.
충렬왕(忠烈王) 때의 직제(職制)는 부만호(副萬戶) 위에 만호(萬戶)가 있고, 예하에 천호(千戶)를 두었다. 원나라 만호부에는 이외에 도만호(都萬戶)·도부만호(都副萬戶)·총관(總管)·총파(총파)·탄압(탄압) 등이 있었으나 고려의 만호부에는 보이지 않고 있다. 부만호는 13세기 국제정세 속에서 탄생한 군직으로 국방과 치안이 주요 업무였다.
그러나 만호부는 원나라에서 고려에 설치한 군사조직으로 부만호의 관직은 어디까지나 원나라의 관직이었으며, 원나라에서 직접 임명하였거나 당시의 일반적인 예와 같이 고려왕이 추천하여 원으로부터 형식적인 절차를 받았거나 고려에서 독자적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반원정책(反元政策)을 추진하게 됨으로써 만호부의 성격이 바뀌게 됨으로써 부만호를 비롯한 만호부의 군직은 고려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부만호의 군직은 1359년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이를 격퇴하는 데 큰 전공(戰功)을 세운 인물이 임명되었는데, 그 예로 박원굉(朴元浤)·김원봉(金元鳳)·김득배(金得培)·김어진(金於珍)·김동불화(金同不花)·김광보(金光甫)·도길부(都吉敷) 등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