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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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1722년(경종 2) 임인옥(壬寅獄) 때, 옥사를 밝히고 관련자의 죄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또는 그 호칭을 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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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22년(경종 2) 임인옥(壬寅獄) 때, 옥사를 밝히고 관련자의 죄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또는 그 호칭을 받은 사람.
내용

처음에는 중종 때 평난감훈(平難勘勳)의 예에 따라 고변자인 목호룡(睦虎龍) 한 사람에게만 수충분의갈성효력부사공신(輸忠奮義竭誠效力扶社功臣)으로 녹훈하였으나, 대제학 조태억(趙泰億), 대사헌 김일경(金一鏡) 등의 주장에 따라 1723년 죄인 체포에 공을 세운 포도대장 이삼(李森)을 1등, 신익하(申翊夏)를 2등, 목호룡을 3등으로 고쳐 책봉하였다.

이에 앞서 1등에는 김일경의 추천으로 국구(國舅)이자 영돈녕부사인 어유구(魚有龜)가 물망에 올랐으나 본인의 사양으로 책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녹훈 직후 영의정 조태구(趙泰耉), 우의정 최석항(崔錫恒) 등의 반대로 다시 목호룡 1인만 단훈(單勳 : 혼자서 공훈을 받음.)되어 동성군(東城君)에 봉해지고 나머지 2인은 삭훈되었으며, 공신호도 갈성효력의 4자를 삭제하여 수충분의부사공신(輸忠奮義扶社功臣)이라 하였다.

그 뒤 영조의 즉위와 더불어 노론이 집권하자 임인옥이 목호룡의 무고에 의하여 조작된 것으로 단정, 목호룡을 무상부도죄인(誣上不道罪人)으로 처형함으로써 1725년 공신칭호는 삭제되었다.

참고문헌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신임제요(辛壬提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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