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과 더불어 귀환동포들이 생활근거지로 모여들어 터를 잡고 노점을 차림으로써 시장으로 형성되었다.
본래 ‘도떼기시장’에서 출발하여 1948년에는 공식명칭을 ‘자유시장’으로 정하고 단층목조건물 12동을 건립하였다. 6·25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로 그야말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때부터 국제시장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닌 채 인근 광복동·남포동의 도심상가와 더불어 유통기능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귀환재일동포와 이북피난민들이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시장상인으로 등장하였고, 끝내 상권을 장악할 만큼 성장한 경우도 적지 않다. 동란의 혼란 속에서도 국제시장은 활황을 누렸다.
원조물자·구호품·군용품이 절대부족상태의 민간소비용품과 함께 유통되었고 속칭 ‘양키시장’ 같은 곳에서는 외제품이 판을 쳤다.
서울에서 피난살이로 부산에 내려간 문인·식자들 중에서도 국제시장의 어느 구석에서 호구지책을 마련한 이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당시의 국제시장은 상거래장소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문화의 용광로이며 정보와 변화의 원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 12월과 1953년 1월의 연이은 두 차례의 대화재는 그것이 가져온 물질적 손실도 컸지만 전시의 엄동설한에 영세상인과 주민에게 준 충격 또한 매우 컸었다. 화재가 난 뒤 2층 건물 12개 동이 재건되고 상가의 면모가 일신되었으나, 국제시장은 이미 이전의 활기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휴전과 더불어 피난민들이 돌아가고 새로운 경제질서가 자리잡히기 시작하자, 국제시장은 그 동안의 갖가지 애환을 간직한 채 부산권의 일반 도·소매시장으로 탈바꿈하였다.
1966년 5월 정부가 시장대지를 상인들에게 불하하기로 약속하였고,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 이어 1968년 1월에는 목조건물 3동을 제외한 9개 동이 철근콘크리트로 개조되었고, 상가대지 2,177평이 불하되어 1,489칸의 점포가 개인별로 등기되었다.
1969년 1월 사단법인 국제시장번영회가 설립되어 상공부장관의 인가를 받았고, 1977년에 정식으로 시장개설허가가 나왔다.
1995년 현재 대지면적 7,197㎡, 시장연면적 1만 2095㎡, 점포 수 1,489개 등의 규모이고, 1,700명이 종사하고 있다. 주로 거래되는 상품은 의류를 비롯해 가전제품, 직물, 신발, 가방, 일용잡화 등이다.
지방화의 큰 흐름에 따라 부산의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부산이 금융과 유통의 전국적 중추기능을 가지게 된다면, 국제시장은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