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무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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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무원종공신녹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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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1728년(영조 4)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또는 그 훈호를 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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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28년(영조 4)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또는 그 훈호를 받은 사람.
내용

1등은 실제로 난의 진압을 총지휘한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으로,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輸忠竭誠決機效力奮武功臣)이라 하였다.

2등은 직접 일선에서 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박찬신(朴纘新)·박문수(朴文秀)·이삼(李森)·조문명(趙文命)·박필건(朴弼健)·김중만(金重萬)·이만빈(李萬彬) 등 7인으로 수충갈성효력분무공신이라 하였다.

3등은 역시 토역(討逆 : 반역을 토벌함.)에 종사한 조현명(趙顯命)·이수량(李遂良)·이익필(李益馝)·김협(金浹)·이보혁(李普赫)·권희학(權喜學)·박동형(朴東亨) 등 7인으로 수충갈성분무공신이라 하였다.

이들 중 김중만은 뒤에 고변자를 2등으로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로 3등으로 강등되었으며, 조문명은 왕세자의 장인일 뿐 별다른 공이 없다고 하여 물의가 있었다.

공신책봉에 따르는 토지지급과 같은 은전은 없었으며, 단지 공신녹권을 지급하여 후손의 녹용(錄用)을 보장하고 당사자의 자품(資品)을 올려주는 데 그쳤다. 이 분무공신 책봉을 끝으로 이후의 조선시대의 공신책봉은 없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당의통략(黨議通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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