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불국사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호암 귀은(浩巖歸隱)은 속성이 이씨(李氏)이다. 불국사 남쪽 활촌(活村)에 살았으며, 출가 후 주요 기록들을 모아서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를 지었다고 한다. 그는 편양파(鞭羊派) 승려로 대암 국탄(大庵(巖)國坦)의 제자이며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7세손이다.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는 1권 1책의 필사본이다. 1767년(영조 43) 만연(萬連)이 쓴 발문에 의하면, 귀은이 처음 집필했고 만연이 새로 베껴 썼다. 이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 중에는 '1933년 일본 교토제국대학(京都帝国大学, 현 교토대학) 소장본 필사, 1935년 규장각 필사본 비교, 경상북도 간행 활자본 비교, 『불국사사적(佛國寺事蹟)』(목판) 대교'라고 주기 사항이 쓰인 1933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도 있다. 주요 내용이 동일한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는 1923년 일본 나라(奈良)의 도다이지(東大寺) 도서관 필사본이다.
『불국사고금역대기』의 첫 부분에는 1822년(순조 22) 경상도 관찰사 김공(金公)의 공덕을 기리는 글과 함께 승통(僧統), 유심(有心) 등의 이름이 나온다. 따라서 이때 책을 간행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현재 유통되는 필사본에는 1856년까지의 불국사 사적이 기재되어 있다.
『불국사고금역대기』는 불국사 전각의 창건과 중수, 불상 및 탑의 조성, 관련된 시주와 법회, 설화와 전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는 '신라 법흥왕 때 모후 영제(迎帝) 부인이 528년 사찰을 창건했고, 왕비 기축(己丑) 부인이 출가한 후 법명을 법류(法流)라고 하여, 절의 이름을 화엄불국사(華嚴佛國寺), 화엄법류사(華嚴法流寺)라 했다'고 한다. 이는 8세기 중반 ' 경덕왕 때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 다르다. 『불국사고금역대기』의 이러한 기록은 불국사 창건 시기를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던 무렵으로 끌어올리려던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신라 이후의 기술에서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또한 불국사가 전소된 임진왜란 이후 중창 및 중수 불사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 이전의 가람 구조에 대한 언급이 있어 불국사의 원형을 추적해 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불국사 경내가 대웅전 · 극락전 · 비로전 · 관음전 · 지장전의 5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적기는 불국사의 창건(創建) 연기(緣起)에 대한 신빙성은 부족하지만, 불국사의 가람 배치와 조선 후기 중건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