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06m. 비로전 왼쪽의 보호각 안에 있는데, 지금의 자리가 원래의 위치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장식이 아름답고 단아하여 1905년에 일본으로 운반되어 나갔다가 1933년에 되돌아왔다. 겉모양은 석등과 비슷하며,「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 기록된 ‘광학부도(光學浮屠)’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탑은 받침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받침돌은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로 이루어졌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놓인 아래받침돌은 단면이 8각으로, 위아래 2단으로 구성되었다. 아랫단의 각 면에는 위아래로 테두리가 둘러졌으며, 그 사이에 안상(眼象)이 1구씩 조각되었는데, 안상의 가운데 아래부분에는 위로 솟은 꽃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윗단은 아랫단과 비슷한 높이인데, 1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무늬 8개가 큼지막하지만 소박하게 돋을새김되었다. 가운데받침돌은 높이가 제법 높은 북 모양으로, 겉면에는 구름무늬가 깊게 새겨져 있다. 윗받침돌은 아랫부분에 1장의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무늬 9개가 돌려 조각되었는데, 연꽃의 가운데에는 꽃무늬 모양의 원좌(圓座)가 얕게 돋을새김되어 있다.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고 있는 낮은 굄 주변에 연꽃의 열매인 연자(蓮子)가 오목새김되었다.
몸돌은 여느 승탑이나 석등과 달리 가운데부분이 볼록한 원통 모양으로, 위아래에 연꽃과 보상화(寶相花)를 새긴 기둥을 조각하여 4면으로 나누었다. 각 면에는 얕게 오목새김한 불감(佛龕)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如來坐像) 2구와 함께 보살입상(菩薩立像) 2구를 돋을새김하였으며, 감실의 윗부분에는 장막을 드리워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몸돌 윗부분에 조각된 연꽃무늬 위에 올려져 있다. 돌의 재질이 연약하여 곳곳에 풍화 흔적이 남아 있고, 일부분이 파손되었지만, 비교적 완전한 모습이다. 추녀 끝은 단면이 12각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6개의 능선은 없어졌고, 나머지 6각의 모서리만 남아서 단면 6각을 이루고 있다. 밑면에는 16개의 연꽃무늬가 겹쳐져 조각되었고, 윗면인 낙수면은 경사가 매우 완만한 편이다. 꼭대기에는 단면 6각의 낮은 노반(露盤)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둥근 공의 위아래가 눌린 모습의 편구형(扁球形) 복발(覆鉢)이 올려져 있는데, 겉면에는 둥근 가로띠와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몸돌 윗부분의 가운데에는 지름 5㎝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은 지붕돌까지 이어져 있는데, 중심 기둥인 찰주(擦柱)를 세웠던 구멍으로 추정된다. 한편 윗받침돌 가운데에도 홈이 패여 있는데, 이것은 사리를 안치하였던 구멍으로 보인다.
이 사리탑은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에서 벗어나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 수법으로 보아,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