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면 소재지에서 동쪽 300m 지점으로 자혜행 도로를 신설할 때 패총의 북쪽 일부가 끊겨 도로 남측으로 단애를 이룬 지층 속에서 패각이 노출됨에 따라 알려지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1967년 6월단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다.
지하 70㎝에서 시작된 패층은 서쪽으로 점차 깊어져 길이 13m되는 단애에서는 지표에서 2m 깊이에 노출돼 있어 서쪽으로 갈수록 깊고 두껍게 묻혀 있는 경사진 패층임을 알 수 있다.
발굴조사는 현재의 경작지에서 단애쪽으로 300평 넓이 되는 곳에 대해 실시되었다. 패총의 동쪽 한계는 뚜렷하고 남쪽도 거의 판명되었으나 서쪽은 계속 깊어지며 연속되고, 북쪽은 주요부가 도로공사로 인해 완전히 결실되었다.
동쪽과 남쪽은 현 지표에서 30㎝ 깊이에서부터 패층이 시작되는데, 서쪽과 북쪽으로 가면서 점차 깊어져서 서단과 북단에서는 지하 1.4m에서 비로소 패층을 볼 수 있었다.
출토유물을 살펴보면, 패각 중 굴껍질과 소라껍질이 제일 많았다. 이 밖에 우렁이·달팽이·고막·조개 등 10여 종이 있었다. 골편(骨片)은 녹각(鹿角)을 비롯한 동물의 치아와 많은 짐승의 뼈가 채집되었다.
토기는 거의 문양이 있는 토기로 문양이 없는 토기는 남쪽 한계점과 서쪽의 남단 얕은 지하에서만 출토되었다. 문양은 어골문(魚骨文)·사격문(斜格文) 등 30여 종이 있다. 특히, 구멍이 뚫린 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발굴된 토기조각 중에는 구연부(口緣部)조각이 많고 난형저부(卵形底部)와 첨저형(尖底形)도 여러 점 채집되었다. 골기(骨器)로는 뼈바늘〔骨針〕과 뼈낚시〔骨釣〕가 출토되었다.
패기(貝器)는 주로 장신구로서 패각을 도려내 잘 갈아 팔찌형으로 만든 것이 여러 개 발굴되었는데 그 수법이 주목된다. 석기로는 구멍이 뚫린 추(錘)가 출토되었다.
이 일대의 언덕은 현재 모두 경작지로 변했는데 주위 몇 곳에는 패각이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확인, 조사되지 않은 패총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