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칠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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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집(권16) / 부기명언비사단칠정분리기변
퇴계집(권16) / 부기명언비사단칠정분리기변
유교
개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간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에 관한 논변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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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간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에 관한 논변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내용

이 사칠논변은 인성론(人性論)중심의 한국 성리학의 특색을 뚜렷이 보여 주는 자료일 뿐 아니라, 나아가 한국 성리학이 그 나름의 독자적인 경지를 획득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물론, 성리학은 태극(太極)·이기(理氣)를 중심 개념으로 하는 세계관과 심·성·정(心性情)을 중심 개념으로 하는 인간관이 성즉리(性卽理)라는 대전제 아래 상호 체계적 연관을 맺고 있는 이론이기 때문에, 이 사칠논변도 순수한 인성론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기성정논변(理氣性情論辯)으로 명명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칠논변의 근저에는 성리학의 이기론에서의 두 가지 상대적인 관점인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입장과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입장이 대립돼 있기 때문이다.

사단의 이발(理發)을 고수하는 퇴계와 사단의 경우도 이발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고봉의 입장은 각각 이기불상잡과 이기불상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칠논변은 인간을 포함한 존재 일반에 대한 이기론적 해명이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의 행위의 주체와 선의 가능 근거와 그 형식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겠다. 이 점은 이 논변이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 天命圖>를 통해서 발단되었다는 점에서도 더욱 분명해진다.

사칠논변은 퇴계가 53세 되던 해 10월 정지운의 <천명도>에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 發於理 七情 發於氣)”로 되어 있는 것을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四端 理之發 七情 氣之發)”으로 수정을 한 것이 사우(士友)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서 시작되었다.

이런 논란을 전해들은 퇴계는 59세 되던 해 고봉에게 편지를 보내 앞의 내용을 “사단의 발은 공(公)하여 불선(不善)이 없으며 칠정의 발은 사(私)로서 선악이 있다(四端之發純理故無不善 七情之發兼氣故有善惡)”로 수정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대해서 고봉은 성은 무불선(無不善), 정은 유선악(有善惡)임을 인정하지만 칠정 외에 사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단은 칠정에 통일시켜야 한다는 주장했다. 즉, 사단과 칠정은 이를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처럼 대립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 근거로서 이기불리의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서 퇴계는 이기불리의 관점과 사·칠이 모두 정임을 긍정하면서도, 불리의 강조가 부잡을 도외시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단과 칠정은 같은 정이지만 그 소종래(所從來)의 근원과 소주(所主)의 취지에서 차이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퇴계는 ≪주자어류≫ 가운데 “사단 이지발 칠정 기지발(四端 理之發 七情 氣之發)”을 읽고 더욱 자신을 얻어, 성을 천지지성(天地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이기분속(理氣分屬)하는 것이 가능하듯이 정인 사단과 칠정도 이기분속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순선(純善)의 근거로서의 사단과 겸선악(兼善惡)의 근거로서의 칠정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고봉은 천지인물상(天地人物上)에서 이기의 분리는 가능하지만 성정(性情)은 이미 현실적인 이기 결합의 구조 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겸이기 유선악(兼理氣 有善惡)하기 때문에, 이를 분속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퇴계의 이론이 사단과 칠정을 양정(兩情)으로 보아 정에 두 가지 다른 근거가 있게 하며, 순수한 이에서 오는 선과 겸기(兼氣)에서 오는 유선악(有善惡)의 선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보게 하는 이원적 구조를 가지게 될 위험이 있음을 거듭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서 퇴계는 상호 간의 동이(同異)를 한번 정리하면서 첫 번째에 대한 개정본과 스스로의 주장을 정리한 답서를 보낸다.

특히, 퇴계는 다시 한번 스스로의 입장을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四端 理發而氣隨之 七情 氣發而理乘之)”으로 수정을 하면서, 이기불리의 입장에서 이발을 인정하기 어려워 하는 고봉의 입장은 이를 무력(無力)한 개념으로만 보는 이허설(理虛說)로 빠질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였다.

이에 대해서 고봉 역시 지금까지의 논변을 정리, 상호의 차이점을 제시하고 합의가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다. 고봉은 특히 자신의 입장을 인설(因說)로 퇴계의 입장을 대설(對說)로 구별하고, 사단에 있어서 이발은 승인하나 성정은 기를 떠나서 있지 않음을 거듭 주장하여 이기를 분별하는 데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는 퇴계의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라는 견해에 접근하기 위해서, 그것을 나름대로 수용한 “정의 발은 혹 이가 동하면서 기를 갖추며 혹은 기가 감하면서 이가 탄다(情之發也或理動而氣俱 或氣感而理乘)”는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이는 이기부잡이라는 퇴계의 관점을 나름대로 수용한 것인데, 끝내 이발과 이동(理動)의 분명한 차이를 제시하지 못한 점에서 자신의 기존 견해를 수정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에 퇴계는 논변을 더 이상 계속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면서 간단한 칠언절구 한 수를 보낸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고봉은 다시 퇴계에게 답서를 보내 사단의 순선(純善)과 칠정의 겸선악(兼善惡)의 선이 같은가 다른가를 물으면서, 이들이 다른 것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에 퇴계는 상호 의견의 접근을 기뻐하면서 양자의 차이를 동본이말(同本異末)이라고 규정했다.

이기의 불상리와 불상잡이라는 이중구조적 세계 해명과 사단·칠정이 모두 인간의 정이란 인간해 명에 근거하여 시작된 퇴계와 고봉 간의 이 사칠논변은, 각기 스스로의 이론적 근거와 입장을 확인하고 수정하면서 상호 접근을 시도한 진지한 토론이었다.

이 과정에서 퇴계는 이발에 관한 자신의 주장에 내포된 이기분리(理氣分離)의 위험성을 인식,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라는 해답을 통해서 이 위험을 피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이발 자체가 갖는 성리학의 이기론상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그것을 고수하였다.

이 점이 후에 이의 무작위성(無作爲性)을 부각시켜 퇴계의 이발설(理發說)을 부정한 이이(李珥, 호는 栗谷)의 지적이 있게 된 원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퇴계에 있어서 이발이라는 이의 능동성의 강조는 그 이론적인 난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퇴계에 있어서 사단을 이발로 고집함은 상대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속에서 순선의 근거를 확보하는 일이었으며, 이는 바로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 이래 유학에 있어서의 인간 긍정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고봉의 경우는 이기불리를 강조함으로써 퇴계의 수정을 얻어냈지만, 이런 과정에서 이발을 이동(理動)으로 인정함으로써 이·기의 개념에서 이의 능동성을 인정, 이·기에 대한 본래의 분명한 기능 분석을 상실하고, 논지의 일관성을 잃게 되었다.

사단·칠정의 발현에서 이원적 구조를 인정하는 것은, 선의 근거를 이원적으로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인간 성정(性情)의 이원적 형태를 인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기의 이원적 세계관을 설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순선과 겸선악의 선, 성과 정, 이와 기의 이원적 구조가 주종적(主從的)인 관계로 이해될 때 파생하는 갈등적 구조를 고봉이 끝내 인정하지 못한 점에서 보더라도, 이 논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고봉의 관점을 이어 철저한 논리를 전개한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의 경우도, 그 이론 자체에서의 일관성과 의미는 인정되지만, 퇴계의 호발설(互發說)에 대한 결정적인 시정이 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책임은 무엇보다도 성리학의 이론 체계가 단순하고 일관된 형태로 표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처럼 서로 다른 해석의 체계가 각각 어떤 관점과 주장을 담고 있느냐를 해명하는 일일 것이다.

퇴계와 고봉의 사칠논변은 성리학의 본격적인 이해와 한국화 과정에서 하나의 기폭제 구실을 담당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사적으로는 성리학의 독존적(獨尊的)인 위치와 세력을 확인하였을 뿐 아니라, 내적으로 성리학 이해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아, 우리 나라에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가 전개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권근(權近) 이후 심성론(心性論) 위주의 특성이 더욱 뚜렷이 부각되어 인간 해명에 있어서 한국 성리학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는데, 이 또한 이 사칠논변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논변은 완벽한 형태는 아니라 할지라도 중요한 학문적 관심에 대한 이론적인 토론의 방법과 분석 방법을 동원하여, 뒤에 이어지는 여러 중요한 논변의 모범이 되었다고 하겠다.

퇴계와 고봉이 논변을 벌였던 이발의 문제나 선의 문제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직도 해결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논변 자체는 엄격히 말하여 성리학의 기본적인 이론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현대적인 시각에서도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퇴계전서(退溪全書)』
『고봉선생문집(高峯先生文集)』
『동양철학(東洋哲學)의 기초적(基礎的) 연구(硏究)』(유정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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