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민성(李民宬: 1570~1629)은 조선 후기 문인으로,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관보(寬甫), 호는 경정(敬亭)이다. 병조정랑, 동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했다. 편자는 그의 양자인 이정기(李廷機)이다.
원집 권1∼12에는 시 1,257수, 부 11편, 사 2편, 표 4편, 서(序) 1편이 실려 있다. 권13에는 기 8편, 서 3편, 논 5편, 제문 4편, 명 2편, 찬 2편, 계사 4편, 발문 2편, 서(書) 6편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권1∼3에 조천록, 권4에 주본(奏本) 1편, 비밀장계 1편, 연보 1편, 행장 2편, 묘지명 1편, 묘갈명 1편, 제문 6편, 만사 42편, 봉안문 1편, 상향문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는 당시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 「맥사(麥詞)」는 최립(崔岦)으로부터 “문력이 아건(雅健)하니 금인(今人)의 구기(口氣)가 아니다.”라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연사창수집(燕槎唱酬集)」은 주문사(奏聞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오는 동안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인데, 함께 갔던 윤훤(尹暄)과 나눈 시가 다수이다. 이민성은 중국인들로부터 두보(杜甫), 한유(韓愈)와 비슷하다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망천도기(輞川圖記)」는 주문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망천도(輞川圖)를 본 소감을 적은 기문으로, 망천봉(輞川峯)에서 추원(楸園)에 이르기까지 20개 절경을 회화적 시선으로 묘사했다. 「옥당처치차(玉堂處置箚)」는 홍문관 교리로 있을 당시 정호선(丁好善)‚ 오정(吳靖) 등과 함께 올린 차자(箚子)이다. 양사(兩司)의 출사를 청하고, 정호(鄭造)와 윤인(尹訒)의 폐모론(廢母論)을 비판하며 이들을 두둔한 유활(柳活)의 체차를 청한 내용이다.
「계백론(階伯論)」은 계백이 처자를 죽이고 출전한 것을 잔인부도(殘忍不道)한 것으로 평한 것에 대해 반박한 글이며, 「맹자불존주론(孟子不尊周論)」은 문답 형식을 빌어 맹자가 존주(尊周)했음을 변론한 글이다. 「동해무조석론(東海無潮汐論)」은 우리나라 동해에 조석 현상이 없다는 설에 대해 논증을 시도한 글이다. 「조천록(朝天錄)」은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기록으로, 1623년 3월 25일부터 1624년 4월 21일까지의 일정을 담고 있다. 북방 지역 지리 연구, 명말 · 청초 대외 관계사 연구와 인조반정에 대한 중국 측의 시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 문집은 이민성의 문학과 사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광해군에서 인조 대에 이르는 시기의 대명 및 대청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조선 사신들의 중국 내에서의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