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원숙(源叔), 호는 태우(泰宇). 유충관(柳忠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당(柳樘)이다. 아버지는 유몽표(柳夢彪)이며, 어머니는 도사 이택(李澤)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1년(광해군 3) 사간원정언에 피임되고, 이어 세자시강원사서·사간원헌납·사헌부지평·승문원전한·성균관직강·홍문관교리·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선조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21년 흉도와 결탁하여 정치를 혼탁하게 하였다는 탄핵을 받았다.
1623년(인조 1)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유활이 폐모론을 앞장서서 주창했다고 논박한 결과 위리안치되었다. 1628년 유효립(柳孝立)의 모반에 관여한 혐의로 다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