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조(許稠: 1369~1439)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하양(河陽)이며, 자는 중통(仲通), 호는 경암(敬菴)이다. 예조판서, 이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했다. 편자는 후손 허묵(許黙)이다.
『경암문집(敬庵文集)』은 6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권두에 김학진(金鶴鎭), 이미(李瀰)의 서문과 권말에 그의 후손인 허용두(李容斗), 허선(許瑄), 허준(許濬)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허조의 유사는 이헌락(李憲洛)이 처음으로 수습하여 편간했다. 이후 후손 허묵이 유문과 묘지 및 기타 자료를 수집하고 연보를 작성하여 문집 형태를 갖추었다. 1907년 허용두, 허선, 허준 등이 간행했다.
권1에 시 2수, 문(文) 7편, 잡저 1편, 권2에 연보 · 상제변설(喪制辨說)이 실려 있다. 권3에는 묘표 · 묘지 · 신도비명 각 1편, 권4에는 소 5편, 제문 5편, 고유문 · 상량문 · 기 · 첩정문(牒呈文) · 서(序) 각 1편, 권5에 해동명신록 1편, 실록 23건이 실려 있다. 권6에는 신증부록(新增附錄) 1편, 유사추보(遺事追補) 3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전주진남루(全州鎭南樓)」는 『동문선』 · 『동국여지승람』 등에도 실려 있는데, 완주판관으로 있을 당시 전라감사로 있던 그의 형 허주(許周)를 두고 지은 것이다. 진남루에 올라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벼슬살이하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읊었다.
문은 계문(啓文)과 소 · 차대(箚對) · 헌의문(獻議文) 등 주로 임금에게 올린 건의문이다. 이 가운데 「청입태학소(請立太學疏)」에서는 태학을 세워서 인재를 양성할 것을 촉구했고, 「정명분헌의문(正名分獻議文)」에서는 당나라 태종 때 종이 주인을 고발했다가 도리어 참수당한 일과, 주희(朱熹)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고사를 예로 들어, 종사(宗社)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 아니면 윗사람을 능멸하는 풍속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수륙재계문(罷水陸齋啓文)」은 공신들이 태조와 태종의 기일에 절에 가서 수륙재(水陸齋)를 올리자,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이를 혁파하도록 임금에게 요청한 것인데, 윤허를 얻어 시행되었다. 「정육전계문(定六典啓文)」은 육전을 정하자고 아뢴 글로, 나라의 운명이 길고 짧은 것은 법의 경중에 달려 있다고 하며 인의의 도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허조의 사상과 학문에 대해 알 수 있는 문헌이다. 조선 전기 유교 사회의 확립, 의례 및 제도 정비 등 정치 ·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