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李榮: 1494~1563)은 조선 전기 학자이자 무신으로,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현보(顯父), 호는 괘편당(掛鞭堂)이다. 청백리로 이름난 무신이다. 편자는 외손 곽종철(郭鍾澈) 등이다.
『괘편당실기(掛鞭堂實紀)』는 3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발문이 있으나 편찬 및 간행 경위가 상세하지 않다. 외손 곽종철 등이 편집, 간행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곽종철과 이상두(李相斗)의 후지(後識)가 있다. 권1에 세계(世系) 1편, 연보 1편, 시 3수가 실려 있다. 권2와 3은 부록이다. 권2에는 사연록(賜宴錄) · 달구지(達丘誌) · 행록 · 묘지 · 묘갈명 · 서후(書後), 권3에는 통문 · 정장(呈狀) · 봉안문 · 상량문 · 기(記) 등이 실려 있다. 본서에 이영의 저작은 권1의 시와 권2의 일부이고, 후손과 문인들의 저작이 대부분이다.
시는 「병중유감(病中有感)」과 만시(輓詩) 2수로 되어 있는데, 만시에는 그가 북병사가 되어 출발하려고 할 때 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정한을 애절하게 표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염근피선사연록(廉謹被選賜宴錄)」은 1551년(명종 6) 왕의 특명에 의해 염근(廉謹)한 조신들을 선발하여 궐내에서 연회를 베풀고 시상했는데, 이 자리에는 홍섬(洪暹) · 윤현(尹鉉) · 주세붕(周世鵬) · 이황(李滉) · 이준경(李浚慶)과 함께 당시 회령부사였던 이영도 참석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달구지(達句誌)」는 『대구읍지』에 기록된 것을 옮긴 것으로 보이며, 「행록략(行錄略)」은 이영의 행적을 간략히 기록한 것으로 1695년 이영희(李永喜)가 지은 것이다. 이어 지은이를 알 수 없는 묘지명과 채성원(蔡星源)이 지은 묘갈명, 이제(李穧)가 지은 「서괘편당이공유적후(書掛鞭堂李公遺蹟後)」와 배원명(裵遠明)이 지은 「서참판이선생행적후(書參判李先生行蹟後)」가 있다.
권3의 통문은 유림들이 사당을 세워 제향을 올리기 위해 발의한 것이다. 「정도백상(呈道伯狀)」과 「정례조상(呈禮曹狀)」은 정려와 포상을 내려주기를 관찰사와 예조에 청하는 내용이다. 이외에 청백사(淸白祠) 상량문 두 편과 이건기(移建記)가 있다.
이영의 생애와 후대의 평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