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제학, 형조판서,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6년(인조 4) 정시문과에 장원, 정언 · 교리 · 헌납 등 청요직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했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강화도에 파천하고 조정에서 화전 양론이 분분할 때 지평으로 강화론을 주장하는 대신들에 대하여 강경하게 논박하였다.
이어 이조좌랑 · 이조정랑을 거쳐,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사간으로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듬해 집의로 일본에 청병하여 청나라를 공격할 것을 상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응교(應敎) ·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고, 1643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기행문을 저술하였다.
이어 형조참의 · 대사간 · 대제학, 이조 · 형조의 판서 등을 거쳐, 1650년 청나라가 사문사(査問使)의 척화신에 대한 처벌 요구로 영의정 이경석(李景奭)과 함께 의주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와, 1653년 회양부사를 지내고 포천에 은퇴하였다. 그 뒤 노인직(老人職)으로 행부호군에 등용, 1658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661년 판중추부사로 윤선도(尹善道)의 상소를 변호하다가 대간의 논박을 받고 파직되었다. 숙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포천의 용연서원(龍淵書院), 흥해의 곡강서원(曲江書院), 춘천의 문암서원(文巖書院)에 각각 제향되었다.
저서로 『용주집』 23권 12책과 『동사록(東槎錄)』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언(記言)』
- 『용주유고(龍洲遺稿)』
- 『성호문집(星湖文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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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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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과거(科擧)의 문과와 무과를 소과(小科)에 상대하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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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시대에, 형조에 속한 정육품 벼슬. 정원은 3명이며, 그중 1명은 문관에서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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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이조에 속한 정육품 벼슬. 정원은 2명으로 문관에서 임명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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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 시대에, 이조에 속한 정오품 벼슬. 정원은 2명으로 병조 전랑과 함께 인사 행정을 담당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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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화친하자는 논의를 배척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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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시대에, 형조에 속한 정삼품 벼슬. 참판과 함께 판서를 보좌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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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병자호란 때에, 중국 청나라와 화친하는 것을 배척하던 신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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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벼슬 따위에 추천하여 관리로 뽑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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