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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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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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홍문관 · 예문관의 정4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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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홍문관 · 예문관의 정4품 관직.
내용

정원은 각기 1인이다. 홍문관응교의 기원은 고려시대 보문각(寶文閣)의 정4품 대제(待制) 혹은 직각(直閣)이며, 1369년(공민왕 18)부터 1372년까지 잠시 응교로 개칭되기도 하였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되면서 정4품관으로 두었다. 학문 연구와 교명 제찬이 주된 직무였고, 경연관(經筵官)의 일원이 되기도 하였다.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으로 집현전과 함께 폐지되었다가 1470년(성종 1) 예문관에 옛 집현전 관제를 부활하면서 다시 설치되어, 1478년 홍문관 직제로 정제화하였다. 홍문관응교는 영예로운 청화직(淸華職)의 하나였다. 지제교(知製敎)·사관(史官)·경연관을 당연직으로 겸임했고, 세자시강원의 강관(講官)과 예문관응교를 겸하기도 하였다.

예문관응교는 고려시대 이래 예문관 혹은 예문춘추관에 설치되어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타관의 겸직이었으며 보통 홍문관의 직제학 이하 교리 가운데 1인이 겸임하였다. 조선 초기까지는 왕명 제찬과 역사 편찬에 참여했으나, 1478년 홍문관이 설치되어 문필을 장악하면서 고유 업무가 없어졌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홍문관지(弘文館志)』
「홍문관(弘文館)의 성립경위(成立經緯)」(최승희, 『 한국사연구』5, 1970)
「집현전(集賢殿) 연구(硏究)」(최승희, 『역사학보』32·33, 1966·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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