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현교회

  • 종교·철학
  • 유적
  • 대한제국기
1906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분립하여 평양의 닭골[鷄洞]산정현에 세워진 장로교회.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치모 (총신대학, 서양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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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6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분립하여 평양의 닭골[鷄洞]산정현에 세워진 장로교회.

내용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번하이슬(Bernheisel, C.F., 片夏薛)과 연수 계택선(桂澤宣) 및 이신행(李信行)·정이도(鄭利道) 등이 교회설립에 큰 소임을 하였다.

1917년 11월 제4대목사로 강규찬(姜奎燦)이 부임하였는데, 105인사건 때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던 그는 3·1운동 때 평양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뒤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송창근(宋昌根)이 담임목사직을 맡았으나, 그의 자유주의적 신학노선 때문에 갈등을 빚어 1936년에 사임하고, 마산 문창교회(文昌敎會)에서 시무하고 있던 주기철(朱基徹)이 부임하였다.

대규모의 예배당을 신축하는 한편 일제의 종교탄압에 대항하여 신사참배반대운동을 강력히 추진하다가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44년 4월 49세로 순교하였다.

광복 후 신사참배반대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라 많은 교인들이 몰려오는 등 성황을 이루었으나, 일제 때 평양노회의 과오에 대한 반응문제로 갈라져 친일교역자들을 끝까지 반대하는 측에서 교회를 이탈, 분열되었다.

북한 정권하에서 김철훈(金哲勳) 목사·정일선(丁一善) 목사·조만식(曺晩植) 장로·유계준(劉啓俊) 장로·백인숙(白寅淑) 전도사가 순교하고, 교인들이 체포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1·4후퇴 이후 월남한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1956년 2월 5일 서울에서 재건 예배를 드림으로써 서울 산정현교회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이후 부흥·발전하여 서울의 용산·이태원·부산 등지에 교회를 설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 『서울산정현교회 연혁』(서울산정현교회, 1998)

  • - 『한국기독교수난사(韓國基督敎受難史)』(김광수, 한국교회사연구원, 1978)

  • - 『한국예수교장로회사기(韓國예수敎長老會史記) 상』(차재명, 신문로교회,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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