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강루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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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유적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변형고인돌 · 구멍무늬토기 관련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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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변형고인돌 · 구멍무늬토기 관련 고인돌군.
개설

사질토가 퇴적되어 이루어진 비옥한 평야지대의 대지 위에 있다. 이 유적은 1981년 11월 7일에 열린 제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 안춘배(安春培)에 의해 보고되었다. 1981년 12월 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약 1개월간에 걸친 1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내용].

발굴조사는 지표상에 나타나 있는 지석묘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그 밑에 깔린 신석기문화층에 대해서는 빗살무늬토기층의 존재만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지표 위에는 변형지석묘(變形支石墓) 5기가 산재해 있었는데, 말기 형식인 기반식무개석토광형(碁盤式無蓋石土壙型)이다. 지석묘 주변에는 소형 석관이 딸린 것도 있는데, 부장용 석관(副葬用石棺)인지 배장(陪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지표에서 45㎝ 정도 깊이까지 이르는 표토층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조각과 붉은간토기〔紅陶〕조각, 그리고 초기철기시대의 와질삿무늬토기〔瓦質繩蓆文土器〕조각 등이 채집되었다. 표토층의 이러한 교란상태는 유적이 오랜 기간 밭으로 경작된 것에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표토층 밑에서는 5∼45㎝ 정도 유물이 보이지 않는 간층(間層)이 계속되다가, 그 아래층에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출토되었다. 표토층의 교란상태를 감안해 이 곳과 표토층에서 채집된 중요유물을 상층유물로, 신석기문화층의 유물을 하층유물로 구분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상층유물로는 검은간토기 쇠뿔잡이〔黑陶牛角形把手〕), 가지무늬토기〔彩文土器〕조각, 붉은간토기〔紅陶 조각, 볍자국 민무늬토기 밑바닥조각〔稻痕無文土器底部片〕, 구멍무늬토기조각, 석추(石錘), 토제어망추(土製漁網錘) 등이 있다. 하층유물로는 빗금문살무늬빗살무늬토기〔斜格文櫛文土器〕, 점줄무늬비살무늬토기〔點列文櫛文土器〕, 태사선문 빗살무늬토기〔太斜線文櫛文土器〕, 세사선문 빗살무늬토기〔細斜線文櫛文土器〕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강루리 선사 유적은 하류쪽으로 인접한 진양군 대평리 민무늬토기 유적과 상류쪽에 있는 산청 묵곡리 청동기시대 유적과 함께 서부 경남지방의 선사문화가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로 변천하던 시기의 실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남강상류(南江上流)의 선사문화(先史文化)-홍도(紅陶)의 전파경로(傳播經路)를 중심(中心)으로-」(안춘배, 『백산학보(白山學報)』 33, 1977)
「산청강루리유적(山淸江樓里遺蹟)」(안춘배, 『부산직할시립박물관연보(釜山直轄市立博物館年報)』 4,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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