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영토로 삼현현(三峴縣, 또는 密波兮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삼령현으로 고치고 삭주(朔州) 관할의 양록군(楊麓郡)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태조 때 방산(方山)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춘주(春州, 지금의 春川)에 귀속시켰다가 뒤에 회양(淮陽)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조선 세종 때 양구군(楊口郡)의 임내로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방산면이 되었다. 삼령의 지명유래는 이곳이 산간분지에 자리잡고 있어 많은 고개가 있다는 뜻에서 나온 듯하다. 지형상으로 도솔산(兜率山)·두타산(頭陀山) 등에 둘러싸여 있고, 이 사이를 수입천(水入川)이 흐르고 있었다.
교통상으로 북쪽의 문등현(文登峴)을 넘어 금강산과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양구와 이어진다. 이곳의 남쪽에 군량동(軍粮洞)이라는 지명이 있는 점으로 보아, 한때 군사 주둔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