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 곽시(郭詩)를 향사(享祀)하고 있다. 곽시는 본관이 선산(善山)으로 조선 중종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역임하였고, 학문이 뛰어나 『과제론삼편(科製論三篇)』을 저술하였다.
본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었으나 조선 정조 때 사당으로 바뀌었다. 1871년(고종 8) 훼철되었던 것을 1889년 지방유림에서 재건하였고, 1967년 모현계(慕賢契)를 조직하여 삼청유허비(三靑遺墟碑)를 세웠다. 매년 음력 3월 첫 정일(丁日)에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