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상무룡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주먹도끼 · 찌르개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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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주먹도끼 · 찌르개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개설

화천댐이 생기기 전에는 허수리(許水里)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건설 당시인 1943년까지 사람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다.

이곳은 파로호가 생기면서 수몰되었던 지역이다. 1987년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한 ‘평화의 댐’ 공사로 하류에 있는 파로호의 물을 빼내면서 유적이 노출되었다.

그 해 1월부터 강원대학교 유적조사단의 ‘파로호 퇴수지역 유적조사작업’으로 유적을 찾게 되었다. 이 유적에서 1.5㎞ 상류지역에서는 흑요석으로 만든 구석기들이 발견되었다.

내용

이 상무룡리 유적은 북한강의 지류인 서천과 수입천이 만나는 하안단구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서천과 수입천이 만나는 곳과 수입천이 흘러드는 서쪽 강변에서 10여 곳의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상무룡리지역은 태백산백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한 하천침식계곡으로, 지질학적으로 매우 안정된 경기육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1942년파로호 담수가 시작되어 1988년 발굴되기까지 40년 동안 호수에 잠겨있던 부분의 지형변화가 심각하였다. 인근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상무룡리 유적의 구석기시대문화층을 덮고 있던 둔덕이 2∼3m 깊이로 깎여 나갔다고 하였다.

발굴할 당시 제일 위의 중기 구석기시대문화층은 지표 하 20∼100m 깊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몰되기 직전인 1940년경에는 두꺼운 지층들이 덮여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표토층이 깎여 나가면서 구석기문화층의 높은 층이 노출되어 문화층 속에 박혀 있던 구석기들이 흩어져 나와 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상무룡리 유적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어 발굴되었다. 수입천과 서천이 마주치는 사이의 강 언덕에 위치한 유적은 중기 구석시대문화층과 후기 구석기시대문화층을 같은 지역에 위ㆍ아래로 갖고 있는 곳이다. 또 하나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은 앞의 것보다 서천을 쫓아 1,500m 상류에 위치한다.

하류에 있는 상무룡리Ⅰ유적(강원대학교 발굴)의 지층은 위에서 아래로 겉흙층(Ⅰ층)-찰흙층(Ⅱ층)-모래질 찰흙층(Ⅲ층)-자갈층(Ⅳ층)-기반암풍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Ⅱ층은 제1문화층이며 후기 구석기가 출토되었다. Ⅲ층과 Ⅳ층 사이에 제2문화층이 위치하며 중기 구석기가 출토되었다. Ⅱ층과 Ⅲ층은 언땅트기(mud crack)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퇴적환경과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데 도움을 준다. Ⅲ층과 Ⅳ층에는 망간이 많이 흘러들어 자갈돌과 석기들이 녹과 같은 붉은 빛깔로 된 덮개를 뒤집어 쓰고 있어 퇴적 당시의 기후가 따뜻하고 습했음을 알 수 있다.

Ⅱ층은 Ⅲ층 윗부분에 나타나고 있는 언땅트기현상이 있는 지층을 경계로 퇴적되어 있다. 갈라진 틈을 제Ⅱ층의 흙들이 메우고 있다. 후기 구석기문화층이 포함되어 있는 지층으로 위ㆍ아래부분 지층에서 유물들이 발견되어 장기간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층은 망간성분도 없으며 토양의 입자가 치밀한 점으로 보아, 토양풍화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층의 성격으로 보아, Ⅱ층은 마지막 빙하기(第四氷河期 : Wurm)에 퇴적되었고, Ⅲ층은 마지막 간빙기(間氷期 : RissㆍWurm)에 퇴적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출토 유물

상무룡리Ⅰ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는 모두 2,718점(후기 구석기문화층 868점, 중기 구석기문화층 1,850점)이다. 여기에 지표채집한 3,694점의 석기를 더하면 6,412점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된다.

중기 구석기문화층에서 발굴된 석기는 모두 1,850점이다. 주먹도끼 8, 찍개 47, 찌르개 50, 사냥돌 1, 긁개 349, 밀개 57, 자르개 6, 째개 2, 주먹까뀌 1, 주먹대패 13, 뚜르개 19, 톱날 7, 홈날 10, 돌망치 84, 떼개 13, 모루돌 7, 몸돌 37, 격지 230, 덜된 연모 617, 부스러기 285점이다.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 발굴된 석기는 모두 868점이다. 찍개 34, 찌르개 18, 사냥돌 1, 긁개 141, 밀개 22, 자르개 3, 째개 1, 주먹까뀌 1, 주먹대패 6, 뚜르개 11, 톱날 2, 홈날 2, 돌망치 17, 떼개 3, 몸돌 3, 격지 252, 덜된 연모 276, 부스러기 75점이다.

상무룡리Ⅱ유적은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곳으로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많이 발굴되었다. 이 흑요석은 아직까지 산출되는 곳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돌감으로 상무룡리 인근지역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흑요석 산출지로는 화산활동이 있었던 백두산 일대가 가장 풍부하게 나타나며 그 밖의 지역에서 발견된 예는 거의 없다.

의의와 평가

유적의 연대는 석기의 형태와 지층에 따라 상무룡리Ⅰ유적의 제1문화층은 후기 구석기(2∼5만년전), 제2문화층은 중기 구석기 또는 그 보다 이른 시기(7∼12만 년 전)의 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참고문헌

『상무룡리』(최복규 외, 강원도·강원대학교박물관,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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