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통헌대부, 봉헌대부, 숭덕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아버지가 복직되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호종한 공이 인정되어 숭덕대부로 품계가 올랐다. 상례를 끝마치고 금화내자제조(禁火內資提調)를 겸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서 온 가족이 강화도로 피난을 갔지만 정신옹주가 피난생활을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서울로 돌아왔다. 사헌부에서 국가와 존망을 함께해야할 근신(近臣)과 거실(巨室)의 행위가 아니라며 삭탈관직을 청하자 인조가 그를 파직시켰다. 1631년(인조 9) 아버지가 죽자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만년에 다시 상방원(尙方院) 및 관상감(觀象監) 제조와 총관(摠管)을 겸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죽음집(竹陰集)』
- 『대동야승(大東野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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