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규 ()

송규
송규
원불교
인물
일제강점기 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
이칭
정산(鼎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고종 37)
사망 연도
1962년
본관
야성(冶城)
출생지
경상북도 성주군
내용 요약

송규(1900~1962)는 일제강점기 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이다. 본관은 야성, 본명은 송도군(宋道君)이고, 법명은 규(奎), 호는 정산(鼎山)이다. 1918년 정읍에서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을 만나 원불교에 입문하였다. 1943년 소태산 박중빈이 사망하자 종통을 계승하여 종법사에 취임하였다. 1962년 박중빈의 일원대도사상 위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이상으로 ‘삼동윤리’를 제시하였다. 정산의 ‘삼동윤리’는 모든 종교·철학·사상이 지향할 바를 제시한 것으로서 대동화합의 윤리로 평가된다. 저서로 『금강경의 현대적 해석』과 『불법연구회창건사』가 있다.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
개설

본관은 야성(冶城). 본명은 송도군(宋道君), 법명은 송규(宋奎), 호는 정산(鼎山). 1900년 8월 4일 경상북도 성주에서 아버지 송벽조(宋碧照), 어머니 이운외(李雲外)의 장자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9세에 할아버지의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좋은 스승 만나기를 염원하던 중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을 만나게 되어 원불교에 입문하였다.

원불교 첫 사업으로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길룡천을 막는 방언공사를 통해 농경지를 확보하면서부터 박중빈의 인정을 받고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방언공사가 끝나자 박중빈은 송규를 비롯한 8인 제자들과 함께 교단 창립의 정신 결속과 진리의 감응을 얻기 위하여 기도를 하였는데, 송규는 중심 위치에서 이 과업을 수행하였다.

그 뒤 부안 내변산에서 박중빈과 함께 3년 동안 원불교정전을 초안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였으며, 1924년 원불교 임시 명칭이었던 ‘ 불법연구회’ 교단의 총부가 전라북도 이리에 건설되자, 연구부장 · 교무부장 · 총무부장 · 교정원장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1942년 박중빈의 『불교정전(佛敎正典)』 편찬을 보좌하다가 1943년 6월 박중빈이 사망하자 종통을 계승하여 종법사에 취임하였다.

이어 교단의 해산과 일본 불교화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일제 압력에 대처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새로운 국가건설의 방향을 제시하는 『건국론(建國論)』을 발표하는 한편, 국가의 긴급한 사업으로서 3대사업을 추진하였다.

첫째, 전재 동포 구호사업(戰災同胞救護事業)으로서 일본 · 만주 · 중국 등에서 귀국하는 전재 동포를 구호하기 위해 서울 · 익산 · 부산 등지에 임시구호소를 설립하는 한편, 전재 고아를 수용, 양육하도록 하였다.

둘째, 한글보급운동으로 전국의 원불교 교역자를 소집하여 먼저 한글교육을 실시하고, 그들이 각 지방으로 되돌아가서 한글보급과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셋째, 교육사업으로서 오늘의 원광대학교 전신인 유일학림(唯一學林)을 설립하고, 중등부와 전문부를 두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그리하여 사회 정화와 봉공정신을 교육이념으로 심으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그는 교단의 재정비를 서둘러서, 1947년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명칭을 ‘원불교’로 정식 개명하여 선포하였고, 1948년에 원불교 교헌(敎憲)을 제정, 통과시켜 원불교 교단조직의 기초를 세웠다.

이어 장차 원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교화 · 교육 · 자선이라는 3대목표로 정하고, 주1 · 주2으로 자기교화 · 인간교화 · 사회교화를 추진하였다.

교단 운영은 경제 자립이라는 교조정신을 원칙으로 하고, 외세를 막아내는 힘은 순수 민족 자본 형성에 있다고 믿어 신자를 가르치며 자력갱생으로 교세의 확충을 꾀하였다. 1953년부터는 교조의 언행록인 주3의 편수를 시작하여 발간하도록 하였으며, 예전(禮典) · 세전(世典)을 완성하여 세간 출세간의 생활법도를 새시대에 맞게 제시하기도 하였다.

1962년 1월 22일에 그는 박중빈이 내놓은 일원대도(一圓大道)의 자각 위에서 장차 전인류가 나아가야 할 이상향(理想鄕)을 제시하였다. 이를 ‘ 삼동윤리(三同倫理)’라 했으며, 그의 최후 법문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체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 교조인 박중빈이 제시한 ‘일원상의 진리’를 중심으로 하여 원불교의 일원종지를 확신하도록 신념체계를 세운 점이다.

그는 1932년에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원각가(圓覺歌)」라는 장편의 가사를 지었는데, 우주와 인생의 근본 진리에 대해 변(變) · 불변(不變)이라는 인식원리를 통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고, 나아가 이 진리를 실생활에까지 활용할 것을 밝혔다.

둘째,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을 둔 사회 개혁 및 국가건설에 대한 경륜을 실천하게 하였다. 광복 직후에 발표된 『건국론』을 살펴보면 치국의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도치(道治)로써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의 진리를 깨치게 하며, 다음은 덕치(德治)로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서 대중을 덕화, 감화시키는 길이며, 마지막으로 정치(正治)로써 법 준수와 정의를 세우는 일을 실행하자는 것이다.

셋째,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을 둔 범인류의 생활규범과 문명의 진전에 대응하는 이상세계의 전망이다. 이것은 삼동윤리의 법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모든 종교와 교파가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同源道理],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임을 알아서[同氣連契], 각각 다른 주의 주장으로 모든 사업을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에 한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同拓事業] 다같이 행동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정산의 ‘삼동윤리’는 모든 종교 · 철학 · 사상이 지향할 바를 제시한 것으로서 곧 전 인류가 나아가야 할 포월(包越)의 윤리요, 대동화합(大同和合)의 윤리로 평가된다. 저서로 『금강경의 현대적 해석』과 『불법연구회창건사』가 있다.

참고문헌

『정산법사의 사상』(원불교사상연구원, 1992)
『원불교와 한국사회』(류병덕, 원광대학교 출판국, 1977)
『정산종사법어』(정화사, 1973)
『원불교교고총간 전6권』(정화사, 1969∼1974)
『원불교교전』(정화사, 1962)
주석
주1

원불교 교리 표어의 하나.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2

원불교 교리 표어의 하나. 대소유무의 이치를 바르게 깨치고, 시비이해의 일을 정당하게 건설하여, 개인적으로는 이상적 인격을 이루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이상 세계를 건설하자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3

원불교 경전의 하나. 소태산 대종사의 언행을 모아 기록한 책이다. 원기 47년(1962)에 완정한 뒤 ≪정전≫과 합본하여 ≪원불교 교전≫으로 간행하였다. 15품 547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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