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빈 ()

박중빈
박중빈
원불교
인물
원불교의 교조.
이칭
처화(處化)
소태산(少太山), 대종사(大宗師)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1년(고종 28)
사망 연도
1943년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전라남도 영광
내용 요약

박중빈은 원불교의 교조이다. 1891년(고종 28)에 출생하여 1943년에 사망했다. 자는 처화, 호는 소태산이다. 원불교에서는 대종사라고 부른다.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 새벽에 대각을 이루었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며, 물질문명에 끌려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종교운동을 시작하였다. 1937년에는 대각한 진리를 일원상(一圓相)으로 상징하여, 신앙과 수행의 표본을 삼도록 하는 일원종지(一圓宗旨)를 선포하였다. 1943년 3월에는 기본 경전인 『불교정전』을 친히 감수하여 발행하였다. 1943년 5월 열반하였다.

정의
원불교의 교조.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처화(處化), 호는 소태산(少太山). 원불교에서는 대종사(大宗師)라고 부른다. 1891년 5월 5일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 영촌(永村)에서 아버지 박성삼(朴成三)과 어머니 유정천(劉定天) 사이에 3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범상하지 않았으며 신의가 있고 탐구적인 소년이었다. 박중빈은 7세 때에 청명한 하늘을 보고 우주 · 자연 현상에 대한 의문을 품었으며, 인간의 생사와 존재문제에까지 확장시켜 나갔다. 11세 때 주1에 참여 중 산신의 권능에 대해 듣고, 자신의 의문을 풀어줄 대상으로 산신을 만나기 위하여 ‘마당바위’에서 4년 동안 산상기도를 올렸다.

15세 때 영광군 군서면 마읍리의 양하운(梁夏雲)과 혼인하고, 이듬해 정월에 신년 인사차 처가에 갔다가 고대소설 『조웅전(趙雄傳)』 등에 나오는 도사 이야기를 듣고, 도사를 만나기 위하여 20세까지 정성을 다하였다.

20세에 구도행각의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구도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마음 깊이 자리잡은 숱한 의문들은 ‘장차 이 일을 어찌할꼬?’ 라는 한 기자 생각으로 모아졌다. 25세 때부터는 이 생각마저 잊고 모든 것을 떠나 주4의 경지로 가는 일체 주2주3에 들었다가,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 새벽에 대각(大覺:큰 깨달음)을 이루었다. 원불교에서는 이날을 ‘대각개교일(大覺開敎日)’로 정하고 있다.

그는 대각의 안목으로 당시의 사회현상과 인류의 장래를 관조한 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물질문명에 끌려가는 인류의 정신구원을 위한 종교운동을 시작하였다. 이어서 교단창립과 사회개혁의 첫 사업으로 그를 따르는 아홉 제자와 함께 1917년 저축조합을 만들어 허례폐지 · 미신타파 · 금주금연 · 근검저축 운동을 펼쳤다. 거기서 모아진 자금으로 1918년에 간척사업에 착수하였다.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시작한 간척사업은 교단창립의 정신력 결집과 함께 민중들에게 생활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간척사업의 성공으로 교단의 경제 기초확립과 빈곤한 인근주민에게 농경지를 마련하게 함으로써 생산증대를 가져다 주었다.

간척사업 기간 중에도 밤에는 종교적 인격수련을 계속하여 주5 이념을 구현시켰다. 사업이 완료된 1919년에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공익정신을 다지기 위한 특별기도를 실시하게 하여 법계(法界:진리의 세계)의 감응을 체험하도록 하였다. 이를 ‘법인기도(法認祈禱)’라 부르는데 이기심으로 가득찬 인간에게 대아실현(大我實現)의 표본을 보여준 정신적 자각운동이었다.

기도를 마친 그는 몇몇 제자들과 함께 봉래산(蓬萊山: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변산 소재)에 들어가 세계와 인류를 구원할 교법을 제정하였다. 1924년에는 전라북도 익산에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을 내걸고 종교 교화활동을 시작하였다.

선원(禪院)을 설립하여 교역자 양성과 교도훈련을 병행 실시하였으며, 상조조합을 개설하여 근검저축정신 고취, 상호협동을 통한 생활안정, 주경야독의 공동생활을 펼쳐나갔다. 전통적인 예법을 혁신하여 ‘신정의례(新定儀禮)’를 제정하는 등 교화의 기틀이 될 여러 가지의 법규도 제정하였다.

1937년에는 대각한 진리를 일원상(一圓相)으로 상징하여 신앙과 수행의 표본을 삼도록 하는 일원종지(一圓宗旨)를 선포하였다. 1943년 3월에는 기본경전인 『불교정전(佛敎正典)』을 친감하여 발행하고, “나의 일생 포부와 경륜과 그 대요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나니, 삼가 받아 가져서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이 법이 후세만대에 전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1943년 5월 「생사의 진리」라는 설법을 마치고 6월 1일에 열반하였는데, 세수(世壽)는 53세, 법랍(法臘) 28년이었다. 열반 후에 교단의 결의에 따라 그의 법위를 주6로 받들고, 유해(遺骸)는 원불교 중앙총부의 대종사 성탑에 안치하였다.

그는 교단 창업의 기본계획을 36년 1대로 잡고 이를 다시 12년씩 3회로 나누어, 제1회는 경제기반확립, 제2회는 교서정비, 제3회는 인재양성에 역점을 두었다. 일제강점기 말 불법연구회가 민족단체로 지목받아 극심한 탄압 속에서 교단 존폐위기에까지 이르렀으나,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그 위기를 넘게 하는 계기를 삼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원불교교전(圓佛敎敎典)』(정화사, 1962)
『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정화사, 1975)
『소태산대종사(少太山大宗師)』(손정윤, 원불교출판사, 1975)
주석
주1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주2

갑자기 잊음.    우리말샘

주3

결정적인 판단이나 단정을 내려서 정함.    우리말샘

주4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 이 경지에서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된다.    우리말샘

주5

원불교 교리 표어의 하나.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6

원불교의 법위 등급에서 가장 높은 단계. 석가모니불이나 소태산 대종사와 같은 부처님이 원만성취(圓滿成就)한 경지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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