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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김항이 『주역』의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하여 주창한 역학사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역은 조선후기 김항이 『주역』의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하여 주창한 역학사상이다. 김항은 스승 이운규의 지도를 받고 정진하던 중에 겪은 신비한 체험을 바탕으로 정역을 완성했다. 예로부터 주역과 함께 연산역·귀장역 등 3역이 있었는데, 정역은 연산역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역은 선천에만 적용되고 미래는 후천의 원리를 나타내는 정역의 괘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후천개벽사상을 역리적으로 체계화했다. 또 인간의 본성인 신명개발을 강조하는 신명개벽사상으로 우주사적 원리를 천명한 특징이 있다. 한민족 중심의 종교사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김항이 『주역』의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하여 주창한 역학사상.
내용

김항의 학문적 · 도학적 스승은 이운규(李雲圭)로 알려져 있다. 이운규는 김항의 출생지인 담곡과 인접한 띠울[茅村]에 은거하고 있던 학자였다.

김항이 36세 때인 1861년( 철종 12) 이운규는 경주에서 올라온 최제우(崔濟愚)와 전라도에서 온 김광화(金光華)를 불렀다.

최제우에게는 선도적(仙道的)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여 동학계에 적용되는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라는 주문을 독송하게 하며 근신하라 부탁하였다.

또한, 김광화에게는 불교적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여 “남문을 열고 바라치니 학명산천(鶴鳴山川) 밝아온다.”라는 주문을 주면서 종교적 수련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김항에게는 쇠하여 가는 공부자(孔夫子)의 도를 이어 천시를 크게 받들 자라고 하며 예서(禮書)만 볼 것이 아니라 『서전 書傳』을 많이 읽으면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 뒤에 반드시 책을 지을 것이니 그 때 “나의 이 글 한 수를 넣으라.”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관염(觀淡)은 막여수(莫如水)요 호덕(好德)은 의행인(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라는 글이라 한다.

여기서 특히 ‘영동천심월’이라고 표현한 일월변화사상의 학적 명제가 바로 후일 동학과 『정역』의 공통사상인 선후천개벽사상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 그 뒤 김항은 54세 되던 1879년에 ‘영동천심월’의 오묘한 의미를 파악하여 그것을 입도시(立道詩)에 표현해 놓고 있다.

그 뒤 계속 정진하던 중 눈에 생소한 괘획(卦劃)이 나타나기 시작하므로 이러한 괘가 『주역』에 있는가 살펴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계시적인 체험을 통하여 나름대로의 팔괘도를 작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와는 다른 정역팔괘도이다.

이어서 그에게 공부자의 영상이 나타나 “내가 일찍이 하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루었으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라고 하였다는 경험을 한 뒤 『대역서 大易序』를 1881년 6월 20일에 저술하였다.

그리고 1884년에 『정역』의 상편인 <십오일언 十五一言>에서 <무위시 无位詩>까지 저술하고 뒤이어 1885년에 <정역시 正易詩>와 <포도시 布圖詩>를 비롯하여 하편인<십일일언 十一一言>에서 <십일음 十一吟>까지 저술함으로써 2년간에 걸쳐 『정역』을 완성하였다.

역(易)이란 만물을 끊임없는 변화로서 파악하는 것이며 역학은 이 변화의 원리를 논하는 것이다. 역위설(易緯說)에 따르면 역이라는 명칭 속에는 간이지덕(簡易之德) · 변역지리(變易之理) · 불역지리(不易之理)의 삼의(三義)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이렇게 세 가지로 정의하는 것은 『역경 易經』 십익전(十翼傳)에 고전적 근거를 둔 것으로서 역위설 이래로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통설로 되어왔다. 그런데 간이지덕과 불역지리는 역리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불과하고 오직 변역지리만이 역리의 본질적 내용이다.

그러므로 계사(繫辭)에서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라 하였고 정이(程伊)가 “역은 변역인데 도(道)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고 바뀐다.”라 한 것은 역도(易道)의 본령적 의의가 변역지리에 있는 것으로서, 거기에 이미 간이와 불역의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은 예로부터 연산(連山) · 귀장(歸藏) · 주역(周易)의 3역이 있었는데 연산역과 귀장역은 없어지고 ≪주역≫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연산역은 간(艮)을 머리로 하고 귀장역은 곤(坤)을, 주역은 건(乾)을 머리로 한다고 하였는데, 간을 머리로 한 『정역』이 연산(김항의 출생지로 지금의 논산)에서 나왔다고 하여 삼역의 관계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주역』은 연산에서 귀장(歸藏:돌아가 갖춤)되었다가 김항에 의하여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역(一夫易)이 연산역처럼 간을 머리로 하고 한국의 연산에서 나온 것이 신기한 일이므로 그렇게 미루어보는 것일 뿐 사실은 알 수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복희괘와 문왕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 나타난 것을 보고 성인(聖人)이 만든 것이라고 『주역』 계사에 나와 있다. 하도는 제1역으로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하수(河水)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문채를 받아 팔괘를 그은 것이며 역학발생의 시초이다.

낙서는 우(禹)가 치수할 때 신묘한 거북이 나타나 9를 이르는 수를 등에 드러내 보임에 따라 수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제2역이다.

일부역은 연산의 김항에 의하여 세상에 나타난 것이며 제3역이다. 제1역과 제2역이 선천역(先天易), 즉 과거와 현재를 나타내는 역인 데 비하여, 일부역은 미래역인 후천역이 된다.

복희역은 천지자연의 소박한 역이요 무문자시대의 역으로서 생역(生易)인 데 비해 문왕역은 인간변화의 복잡다단한 역이요, 문자시대의 역으로서 장역(長易)이며, 일부역은 자연과 인문의 조화된 역이요 세계인류의 신화(神化)의 역으로 성역(成易)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하도의 복희역이 우주창조의 설계도이고 그 설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풀려나온 것이 낙서라고 보는 것이다.

하도가 본래 1 · 6, 2 · 7, 3 · 8, 4 · 9, 5 · 10과 같이 선천적으로 완전무결한 수에 따라 설계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계요 계획이며 윤곽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탄생과정의 하도에 의해서 성장과정의 낙서가 이루어지며 그 뒤 설계의 완전실현이 이루어지는 완성의 단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정역』은 최후의 역이며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역이라고 보는 것이다.

『주역』의 구조가 건곤(乾坤)에서 감리(坎離)까지를 상경(上經)으로, 함(咸) · 항(恒)에서 기제(旣濟) · 미제(未濟)까지를 하경(下經)으로 하고 있듯이, 『정역』은 상편 <십오일언>과 하편 <십일일언>으로 되어 있다.

십오일언이란 ‘열과 다섯이 하나로 합하는 말’이다. 열이란 하도의 오황극(五皇極)을 둘러싸고 있는 십무극(十無極)을 말하고, 다섯은 오황극을 말하며, 하나는 오황극의 중심을 말한다.

여기서 10 · 5로 합한다는 것은 10과 5가 그 극중인 1에서 완전히 융합함을 말하며 이것을 십오일언이라 한다. 또, 이것이 우주조화의 반고화(盤固化)를 논하는 것이라고 본다.

십일일언이란 ‘열과 하나가 하나로 되는 말’이다. 열은 무극을 말하고 하나는 태극을 말한다. 이 무극과 태극이 하나로 합치는 것을 십일일언이라 한다. 십오일언은 『주역』의 건곤에 해당하고 십일일언은 그 함 · 항에 해당한다.

『주역』의 건곤이 천도이고 함 · 항이 인사(人事)이듯이, 『정역』의 십오일언은 건곤정위(乾坤正位)의 뜻이 있으며 뇌풍정위(雷風正位)의 체(體)를 이루고, 십일일언은 간태합덕(艮兌合德)의 뜻이 있으며 산택통기(山澤通氣)의 용(用)을 나타낸다.

뇌풍정위의 체는 자연의 초자연적 변화로 인한 윤력(閏曆)의 탈락과 정력(正曆)의 성립을 의미하고, 산택통기의 용은 인간의 초인간적 변화로 인한 인간완성의 길을 의미한다.

『정역』은 <십오일언>에서 <금화정역도>까지는 주로 일월성도(日月成道)에 의한 정력의 사용, 변화 후의 새 질서, 우주의 새 방위, 기후의 새 조화를 나타내는 <정역시>와 <포도시>로 끝을 맺고 있다.

<십일일언>에서 <십일음>까지는 주로 인간완성에 의한 황극인의 등장, 그리고 그에 의하여 새로이 수립되는 신질서와 고도로 발달한 무량복지사회인 유리세계(琉璃世界)를 노래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상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는 『정역』의 사상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선천 · 후천 사상과 자연변화를 이루는 일월개벽사상, 그리고 인간변화와 문화세계를 이루는 신명개벽사상이 그것이다.

첫째, 일반적으로 선천 · 후천을 말할 때 과거의 것을 선천이라 하고 현재의 것을 후천이라 한다. 이것을 인간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출생 이전은 선천이요, 출생 이후는 후천이라 하는 것과 같다.

역학에서도 과거를 나타내는 복희괘와 하도는 선천세계를 말하는 것이라 하고, 현재를 나타내는 문왕괘와 낙서는 후천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역』에서는 선천 · 후천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현재를 선천이라 하고 미래를 후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도 · 낙서의 원리인 『주역』의 괘는 선천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며, 미래에는 후천의 원리를 나타내는 정역의 괘도를 사용해야 된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정역』의 후천개벽사상은 미래의 이상세계 건설의 꿈이요, 미래세계에 펼쳐질 자연변화의 원리를 천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정역』은 현행의 윤력도수(閏曆度數)에서 미래의 정력도수(正曆度數)로 넘어가는 장래의 일월역수변화, 즉 윤변위정(閏變爲正)의 후천개벽기를 기점으로 우주사의 시간적 선후를 확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역』의 근본사상은 역수원리를 바탕으로 후천개벽사상을 말하는 천도적 윤변위정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셋째, 앞에서 언급한 것이 후천개벽의 객관적 세계인 천지일월의 개벽사상이라면, 신명개벽사상은 이러한 이치를 주체적으로 자각한 인간에 관한 내용이다.

『대역서』에서 ‘무역무성 무성무역(無易無聖 無聖無易)’이라 하였듯이, 일월변화와 인간성덕(人間聖德)을 일체로 보는 정역사상은 외적인 일월개벽사상과 아울러 내적인 인간본래성의 신명개발을 매우 강조한다.

따라서, “천지가 말을 하므로 일부(一夫)가 말을 하는 것이며 일부의 말이 곧 천지의 말이다.”라고 한다든지, “금 · 화문(金火門)은 천 · 지 · 인 삼재(三才)의 출입문이다.”라고 『정역』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천지는 천도를 자각한 인간, 즉 성인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역』은 하도의 실현이요, 그 구체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도는 음양의 완전조화체이므로 『정역』도 역시 음양의 완전조화를 나타낸다.

완전한 음양의 조화세계란 남녀가 평등하고 인권이 존중되고 무량한 복지사회가 됨을 의미한다. 또한, 사상적으로도 진리의 근원이 밝혀져 사상적 갈등이 극복되고, 교파초월과 상호이해 · 상호존중 · 상호협력으로 종교의 일치가 도모되는 세계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정역』을 한국과 관련시켜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즉, 역리상에서 본 한국과 한국의 주체적 사상으로서의 『정역』이 언급될 수 있다.

우선 역리로 한국을 살펴보면, 『주역』 설괘전(說卦傳)에서 간(艮)은 겨울과 봄이 동과 북 사이에서 교체되는 괘다. 만물이 종말기가 되면서 곧 발생기가 되는 때이므로 결실은 간방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한, 간은 소남(少男)인데, 한국은 지리상의 위치로 볼 때 동북방으로서 간방이므로 한국은 간소남(艮少男)이라 할 수 있다.

간은 진장남(震長男)에서 출발한 역이 간소남에 이르러 그 막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새 질서와 새 생명이 시작되는 터전이 마련된다. 이것은 바로 종말이 곧 새로운 간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정역의 세계와 상응하고 있다.

즉, 팔간(八艮)으로 시작하여 칠지(七地)로 끝을 맺는 <십오일언>과 <십일일언>이 우주와 만물의 완성을 나타내는 『정역』의 내용이다.

우리 나라는 역리상에서 보듯이 만물을 종시(終始)하는 간역(艮域)으로써 만물이 시종하는 간역(艮易), 즉 정역이 나왔으니 우주론적 · 인류사적 의의와 거기에서 창조될 새로운 세계건설, 즉 유리세계건설의 사명이 크다는 것을 『정역』은 암시하고 있다.

두번째로 정역사상은 19세기 후반의 동학사상과 함께 한민족의 주체사상을 이룬다. 20세기에 발생한 한국의 신종교들의 교리적 토대가 되었던 것이 바로 김항과 최제우에 의하여 천명된 후천개벽사상이다.

그러므로 『정역』의 사상사적 연원은 중국의 선진성학(先秦聖學), 즉 십익(十翼)을 포함한 『주역』에 두었으나, 그 논리적 연원은 도리어 정역원리에서 주역사상이 연원하였다고 봄으로써 『정역』은 한국사상으로서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정역』의 근본사상이 재래의 유학과는 달리 미래를 예견하려는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선천 · 후천의 개념을 새로 규정하고 후천개벽사상을 역리적으로 체계화하였다.

이로써 천도의 일월개벽사상으로는 윤변위정의 원리를 주장하였고, 인도(人道)의 신명개벽사상으로는 도덕적 교화의 윤리를 내세워 공자도 감히 말하지 않았던 우주사적 원리를 천명하였다.

이와 같이, 한말의 상황 속에서 형성된 정역사상은 『주역』의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하여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냈고, 한민족 중심적인 종교사상의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정역(正易)』(김항, 정경학회, 1966)
『정역연구(正易硏究)』(이정호, 국제대학 인문사회과학연구소, 1976)
『정역석의(正易釋義)』(박상화, 동아출판사, 1966)
「정역사상(正易思想)의 연구」(류남상, 『한국종교』,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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