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주역』을 풀이하여 한국식으로 체계화한 역학의 대가로, 『정역』을 주창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그에게 이상한 괘획(卦劃:주역의 기본이 되는 그림)이 종종 나타나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기력이 쇠한 탓인가 생각하였으나 점점 뚜렷이 나타나므로 그것을 그렸는데, 그것이 곧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였다. 팔괘의 명사(命寫)가 끝나자 공자의 영상이 나타나 “내가 일찍이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루었으니 이렇게 장할 데가 있나.”라고 하면서 무한히 찬양하고, 호를 ‘일부’로 하라고 하였다. 이 때가 1881년이었고, 그 해에 「대역서(大易序)」도 얻게 되었다. 1885년 『정역』을 완성하였는데, 그 무렵 논산시 연산면 도곡리 국사봉(國師峯)으로 옮기자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어 『정역』을 공부하였고, 뒤에 이들이 일부계 신종교의 창시자들이 되었다.
공부를 가르치기보다는 제자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였으며, 혹 잘못이 있어도 나무라기보다는 타일렀고, 틀렸다고 지적하기보다는 좀 덜 생각하였다고 하였다. 그로써 그의 천성이 온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평생 낮잠을 잔 일이 없고 밤에도 거의 앉아서 지냈으며, 마지막 순간에도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주역』을 한국식으로 풀이하여 체계화한 한국 역학의 대가였다.
참고문헌
- 『정역연구』(이정호, 국제대학 인문과학연구소, 197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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