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교(甑山敎)의 일파이다. 이동옥은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에서 태어나 여러 곳을 방황하다가 광산군 서창면 운리동(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서 김계주(金桂朱)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았다. 1950년 김계주가 죽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군 금산면 용호리로 가서 무을교를 창립하였다.
그러나 그는 포교활동보다도 증산사상과 『주역』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필사본으로 된 많은 저술을 남겼다. 1982년 그가 죽자, 아들 이향호(李香呼)가 뒤를 이어받았다.
향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하는 일에 관심도 없고 때로는 반발까지 하였으나, 아버지가 죽은 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주문독송(呪文讀頌)과 부적그리기를 정진수련하면서 아버지의 저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무을교에서는 포교활동을 않기 때문에 신도가 많지 않으며, 증산교의 일반사상을 따르고 있으나 다만 역(易)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강당에는 태극(太極)과 24윤원판(輪圓版)을 천장에 달아놓고 있으며, 우주원리를 모두 숫자로 풀어 후천운도(後天運度)를 측량하는 것이 교리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제의는 격월로 매6일 치성을 드리며, 경전으로는 『대순전경』을 비롯 『흠천대요(欽天大要)』 · 『유현전(柔顯典)』 · 『영진기결(灵眞奇訣)』 · 『의해보(義解補)』 등 많은 필사본이 있다. 1987년에 이향호가 사망한 후 이상대(李相大)가 뒤를 이어 본부를 금산면 금산리 139번지에 옮겨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상대는 무성상제(戊聖上帝 · 甑山), 기성대제(己聖大帝 · 車京石), 무성제군(戊聖帝君 · 金桂朱)을 받드는 신앙체계를 형성하였다. 증산교파에서 무을교라는 교명은 이 밖에도 현재 대한불교미륵종(大韓佛敎彌勒宗)이 한때 사용되었고, 박동혹(朴東惑)이 이 이름으로 교파를 만들었으나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