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정립(正立). 법호는 영산(靈山). 전라남도 승주 출신. 원불교(圓佛敎)의 교무(敎務)를 지냈다. 어려서 한문을 배우다가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인천통감부 직원·농장지배인 등으로 생활하다가 32세 때부터 만주·중국·러시아로 전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34세 때 일본경찰에 붙잡혀 4년간 복역하였으며, 38세 때 감옥에서 나왔으나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다가 1927년소태산(少太山)을 만나 전무출신이 되었다.
원불교 총부·농공부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황무지 개간사업에 참여하였고, 1935년 일본 오사카(大阪)교당 교무로 부임하여 원불교의 첫 해외포교사가 되었다.
1936년에는 용신교당 교무로 부임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1939년 수위단원(首位團員)에 피선되었다. 1941년 만주 목단강지부 교무로 부임하여 교화활동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