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성섭(成燮), 법호는 팔산(八山). 전라남도 영광 출신.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의 최초 9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7세 때는 음양복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 뒤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상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다시 12세 연하인 박중빈과 의형제를 맺고 수도정진하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1916년 4월 박중빈이 26세로 대각(大覺)을 이루자 먼저 찾아와 첫 제자가 되었다.
그는 단원이 되어 저축조합 · 방언공사(防堰工事) · 혈인기도(血印祈禱)에 중심소임을 담당하였으며, 방언공사 당시에는 둑에 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몸으로 물구멍을 막아 위기를 극복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전북 익산 보광사에서 열린 불법연구회 창립총회에 참여했으며, 원불교 익산총부 건설에도 적극 참여하여 농업부원으로 일하였다. 총부농업부원 · 서무부장 · 총부감원 · 마령교무 · 영산서무부장 · 원평교무 · 총부순교무 등을 역임하였다.
마령교당교무로 봉직할 때는 낮이면 몸소 밭을 갈고 땅을 파며, 밤에는 야학을 실시하여 주경야독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1957년 원불교 교단 첫 법훈증여식에서 대봉도(大奉道)의 법훈(法勳)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