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서릉은 이천(利川)인으로 하늘을 감동시킨 효자로서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장성현조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북일면 작동마을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효심과 학문이 지극하고 뛰어나 문하시중을 지냈고, 「거가십훈(居家十訓)」을 지었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봉양할 때 목에 큰 종기가 생겨서 의원에 물으니 살아있는 개구리만이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다 하였다. 한 겨울에 구할 길이 없었으나 집앞 나무 아래에다 약탕관을 걸고 약을 끓이자 나무에서 청개구리가 떨어져 약탕관에 들어갔고, 이 약으로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 조정에서는 이를 알고 정려를 내려 포상하였다. 시효는 절효(節孝)이다.
이 비는 1578년(선조 11)에 건립하였다. 화려한 연꽃무늬 대석 위에 비신을 세웠고, 그 위에 이수를 얹었다. 이수는 구름무늬와 함께 개구리형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비명은 ‘고려시중절효선생서공비명(高麗侍中節孝先生徐公碑銘)’이다. 비문은 박순(朴淳)이 짓고 백광훈(1537∼1582)이 글씨를 썼으며 음기(陰記: 비 뒷면의 기록)는 서태수(徐台壽)가 지었고, 전액은 조억수(趙億壽)가 썼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87㎝, 너비 19.5㎝이며 비각으로 둘러 있다.
변걸(邊杰) 등 12인이 주도하여 1669년(현종 10)부터 1694년(숙종 20) 사이에 비각을 중건하였다.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이 편액을 썼고, 1824년(순조 24)과 1913년에 중수하였다. 이 비는 고려시대 호남지방 효행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