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구한 말 서북학회(西北學會)가 설립한 교육구국(敎育求國)의 사립학교.
연원 및 변천
서우학회는 본래 1905년 11월 1일 서우사범학교라는 속성사범과(速成師範科)를 만들었고 한북흥학회는 1907년 1월 3일 한북의숙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08년 두 학회가 통합되어 서북학회가 출범하였고 이에 맞추어 같은 해 11월 3일경성부 낙원동 282번지에 교사를 신축하여 서북협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서북협성학교의 교장에는 이종호(李鍾浩)가 취임했는데, 이때 이동휘(李東輝)는 두 학회의 통합을 ‘독립지기초(獨立之基礎)’라고 했고, 박은식(朴殷植)은 두 학회의 통합을 ‘전국 동포의 무궁한 복지를 가져올 단합정신’이라고 하였다. 후에 박은식은 서북협성학교의 교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민족교육을 실천하여 갔다. 그리고 서북협성학교의 분교 설립을 적극 추진하여 1908년부터 1909년 말까지 전국 각지에 63개 지교(支校)를 설치하였고, 이를 매개로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신교육을 통한 민족의 실력양성운동에 진력하였다.
한일합병 후 서북학회가 강제 해산됨에 따라 1910년 10월 1일 서북협성학교는 오성학교(五星學校)로 교명을 고쳐 부르다가 1918년 4월에 총독부로부터 폐교조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1921년 4월에 최시준(崔時俊)이 오성강습소(五星講習所)를 설치하고 1922년 3월에 최시준·오희원(吳熙源)·허헌(許憲) 등이 설립자가 되어, 1927년 7월 1일 다시 협성실업학교로 개편되었다. 오늘의 광신(光新)중·상업고등학교는 협성학교의 후신이다. 1987년 1월 2일 광신고등학교 36학급 설립인가를 받아 1987년 3월 3일 관악구 삼성동 328번지에 12학급, 706명으로 개교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개화교육연구』(손인수, 일지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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