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년(태종 8) 내약방(內藥房)의 의원으로 왕의 질환에 약을 조제하여 치료하였으나 차도가 없자, 함께 참여한 평원해(平原海)와 전의감(典醫監)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평원해는 의술이 뛰어난 일본의 승려로서 승명이 원해(原海)였는데, 처자를 데리고 귀화하였으므로 전의박사에 임명하고 평씨 성을 내려주었다.
그 뒤 판전의감사(判典醫監事)를 지냈다. 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내의(內醫)로서 양홍달(楊弘達)·노중례(盧重禮) 등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쌀·곡식·저화·마구류·의류 같은 포상을 받았다.
태종 때 성녕대군(誠寧大君), 세종 때에는 영의정 황희(黃喜)와 진평대군(晉平大君)의 창진(瘡疹)을 치료하여 주기도 하였다. 1428년(세종 10)에는 검교참의(檢校參議)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