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지구 산기슭의 택지조성작업을 하던 중 산기슭의 일부에서 거정석영맥암(巨晶石英脈岩)을 주로 사용한 석기 327점이 1967년경희대학교박물관조사단에 의해 집중 발견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유물 중 석기 39점을 형태학적으로 분석하여 발표한 보고서 형식의 논문에서 소개되었다.
석기가 발견된 지층은 적갈색 점토층으로, 이 지층은 박노식(朴魯植)에 의해 모난돌층이 발견되면서 후기 구석기(後期舊石器)가 출토되는 홍적세 후기층(洪積世後期層)임이 확인되었다. 석기집중출토지역은 바로 이 모난돌층과 연결되는 층이었다. 채집된 석기는 도구와 격지 및 파편들로 5차에 걸친 조사에서 모두 327점이 출토되었다. 분포지역은 100㎡ 정도로 이 일대의 다른 곳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발견된 토기들이 유적지에서 제작·사용된 것은 제작시 사용한 돌마치와 돌망치 그리고 수많은 파편들이 출토된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이 곳에서 직접 생활한 사실도 발견된 도구가 사용된 흔적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채집된 유물 중 완형은 모두 39점이었다. 이 유물들이 단일문화권에 속한다는 사실은 지층단면의 조사결과 단일문화층만이 확인됨으로써 알 수 있었다. 채집된 석기는 거의 석영맥암 석기들이며, 깨끗한 석영질 석기도 몇 개 있었다.
모두 39점 중 28점이 몸돌석기이며, 나머지 11점은 격지석기였다. 몸돌석기로는 외면찍개 4점, 양면찍개 8점, 뾰족개 8점, 긁개 4점, 망치 4점, 마치 2점이 채집되었고, 격지석기로는 뾰족개 2점, 옆날긁개 5점, 끝날긁개 2점, 오목날긁개 1점이 채집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격지석기의 특징은 매우 두껍다는 점이다. 떼기를 위한 타면(打面)은 대개가 자연면을 그대로 사용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직접떼기로서 거칠게 만든 타면을 이용한 것으로, 깎인 타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격지석기 중에서 돌날문화격지나 그 것과 비슷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석기를 다듬은 방식도 아주 거친 것이 대부분이어서 수동구석기(水洞溝石器)나 석장리(石壯里)의 제5문화층인 자갈돌찍개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잔손질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 곳에서 출토된 석기의 형태학적 조사와 제작기법, 인접유적과의 비교 결과, 석기는 거의 몸돌석기들이며, 또 격지떼기에서는 석장리 제6문화층 유물에서 볼 수 있는 유사·크락토기법과 모루망치떼기수법을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외면찍개와 양면찍개가 전체의 31%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로 미뤄보아 일단 아시아적 찍개문화로 생각되는 석장리 제6문화층의 석영맥암석기문화와 같은 문화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웅기굴포리 전기문화나 일본의 소즈다이문화(早水臺文化)와 같은 계열의 문화로 후기 구석기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석장리 발굴에 직접 참가한 바 있는 보고자는 석기의 형태학적 조사에서 찍개, 찌르개, 긁개는 대개 석장리 유적 제6문화층의 석기들과 같은 형식의 석기로 보고 있으며 북한의 굴포리 전기 문화층과 함께 아시아적 찍개문화전통을 이어 받은 찍개문화의 하나로 보았다. 그 연대는 30000 B. P.를 전후로 하는 후기 구석기 문화로 보았다.